대통령 후보와 소프트 파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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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27면

국제정치학의 개념 중에 연성권력(soft power)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은 어떤 국가의 정책을 다른 국가가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하는 끌어당기는 힘을 의미한다. 반대로 군사력 같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다른 국가를 강제로 밀어붙이는 힘은 경성권력(hard power)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연성권력과 경성권력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국제정치 현상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미국 부시 행정부의 전반적인 대외정책 실패를 연성권력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대외정책 수행에 있어서 미국이 동맹국과 국제사회를 자발적으로 끌어당기는 연성권력보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경성권력을 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외교적 고립과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의 경우에는 전략적으로 미국과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부강해지는 중국에 대해 다른 강대국들이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하려 하자 중국은 경성권력이 아닌 연성권력으로 대응하고 있다. 경성권력으로 대응하게 되면 주변국에 위협을 주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강대국의 견제와 포위가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중국이 내세우는 평화발전 혹은 조화사회와 같은 구호들은 이러한 중국의 연성권력 정책이 반영된 구호들이다.

그런데 연성권력과 경성권력의 현상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정치에서도 빈번하게 연성권력과 경성권력이 사용된다. 예를 들면 국민에 대해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혹은 일방주의적인 경성권력을 사용하는 대통령과 지도자가 있는 한편 솔선수범과 겸손, 도덕성과 준법정신, 국민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전문적인 능력과 과거의 업적, 잘생긴 용모 등으로 연성권력을 사용하는 대통령과 지도자가 있다. 물론 어떤 대통령이든 경성권력과 연성권력을 섞어서 사용하지만 대통령들 간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 과거 권위주의 군사독재의 시절에는 경성권력이 주였지만 민주화가 된 이후에는 연성권력이 주가 되지 않으면 국정운영이 잘되지 않는다.

일방적인 경성권력의 사용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고, 자발적인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부분적으로 생겨나는 박정희식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는 매우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지극히 민주적인 목표와 절차를 만들어 놓았지만 일방주의적인 통치 스타일 등 때문에 연성권력을 잃으면서 국민의 지지를 잃은 사례로 볼 수 있다. 국민의 지지를 잃으면 국정수행이 파행하게 돼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 이러한 경험에서 볼 때 차기 대통령은 연성권력 면에서 뛰어난 대통령을 뽑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대통령 후보의 검증과 관련하여 여야 모두 이론적·철학적 근거 없이 편의적인 검증의 원칙을 정하는 경향이 보인다. 검증 기준과 평가의 수준에 대해 각기 승패의 유·불리만을 따지는 임의적 잣대를 제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대에는 대통령 후보의 연성권력 능력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후보의 도덕성, 국민에 대한 배려의식, 탈권위적 사고, 전문적인 능력, 과거의 행적과 업적 등을 철저히 따져서 존경하고 따를 수 있을 만한 연성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정치는 다시 파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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