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1조원대 세금 추징당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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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하나은행이 국세청으로부터 1조원대의 세금을 추징당할지도 모를 상황에 처했다. 2002년 서울은행과 합병하면서 적자를 낸 서울은행이 흑자인 하나은행을 합병하는 형식을 취해 세금을 부당하게 감면받았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올해 초 하나은행 정기검사에서 이런 사실을 발견한 뒤 지난달 재정경제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재경부 허용석 세제실장은 7일 "국세청의 유권해석 요청을 검토 중"이라며 "하나은행에 국세를 부과할 수 있는 시한이 내년 3월이므로 시간을 두고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 왜 과세하려 하나=2002년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합병은 겉과 속이 달랐다. 실제론 흑자인 하나은행이 적자인 서울은행을 인수하는 거래였으나 형식상으론 서울은행이 하나은행을 인수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름은 서울은행이 하나은행으로 고쳤다. 적자가 쌓인 서울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하면 하나은행이 이익을 내도 법인세를 거의 안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문제 삼은 것은 이 대목이다.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적자기업이 흑자기업을 인수하는 형식을 취하는 '역합병'은 법인세법상 금지돼 있다. 흑자기업을 적자기업에 합병시켜 부당 절세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국세청은 하나와 서울은행 합병이 역합병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당하게 감면받은 1조원대 세금을 환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역합병 요건은=세법상 역합병에 해당하려면 ▶적자법인을 존속법인으로 하고 ▶합병법인의 이름은 합병을 당하는 쪽의 것을 쓰며 ▶합병 당사자가 서로 특수관계여야 한다.

하나.서울은행 합병은 처음 두 가지 요건은 충족한다. 따라서 셋째 요건이 과세 판단의 관건이다.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은 서로 지분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예금보험공사가 서울은행 지분 100%와 하나은행 지분 54.6%를 보유했다.

예보가 하나은행 지분을 갖게 된 건 1998년 충청은행을 하나은행에 합병시키면서 우선상환주를 사 주는 형식으로 하나은행에 공적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제3자가 합병과 피합병 법인 양쪽에 30% 이상 지분을 함께 가지고 있으면 합병 당사자는 특수관계인 것으로 본다는 법 규정에 걸린다.

◆당혹스런 하나은행=하나은행은 2002년 초 예보의 공적 자금을 다 갚아 합병 계약을 한 2002년 9월에는 예보 지분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애초에 지분율 계산에 넣으면 안 된다는 게 하나은행의 논리다. 그러나 세법 전문가들은 하나은행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법인세법 시행령 88조에선 지분율 계산 시점은 합병등기를 한 해로부터 1년을 소급해 따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경우 2001년 1월 1일부터 소급해 지분율을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당시는 하나은행이 예보의 공적 자금을 다 갚지 못해 예보 지분이 30%가 넘었다. 우선주는 지분 계산에서 빼야 한다는 논리도 시행령 87조와 배치된다. 시행령에선 보통주냐 우선주냐 구분 없이 '발행 주식 또는 출자총액의 100분의 30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최후의 보루로 2002년 합병작업 전에 받은 국세청 유권해석을 들고 있다.

그러나 국세청은 "당시 유권해석은 하나은행이 자의적으로 정한 몇 가지 가정에 맞춘 것이었기 때문에 이번 사안에 직접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칫 1조원대 세금이 추징된다면 하나은행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HSBC은행이 외환은행 조건부 인수라는 선수를 쳐 하나은행은 덩치 경쟁에서 한발 밀린 처지다.

정경민.안혜리.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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