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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의패션@TV] 집에선 추리닝 … 맞선 땐 명품 원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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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30대 여성을 잡아야 된다는 말이 있다. 공전의 히트를 친 ‘내 이름은 김삼순’이 그랬고, 요즘 방영 중인 ‘9회말 2아웃’과 ‘칼잡이 오수정’도 모두 노처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드라마들은 로맨틱 코미디보다 ‘노처녀 판타지’에 가깝다. 여성 시청자들은 개구리가 왕자님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노처녀가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는 확률에 도전하고 있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내’가 되길 은근히 꿈꾸곤 한다.

 ‘칼잡이 오수정’에서는 34세에도 예뻐 보이고 싶은 노처녀의 심리가 패션으로 잘 묘사되고 있다. 평소 집에서는 늘어진 티셔츠에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다가도 검정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맞선을 보러 나가는 오수정(엄정화)의 모습에서는 야릇한 동질감과 모방 심리가 동반된다.

 더욱이 동창회에서 ‘킹카’가 돼 돌아온 옛 남자친구 칼고(오지호)를 꼬시기 위해 오수정이 노력하는 모습은 눈물겨울 정도다. 오수정은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준 ‘적당한’ 뱃살로 20대 때 입던 44사이즈 옷은 꿈도 못 꾼다. 결국 동창회 날에는 관장약과 복대라는 은밀한 처방으로 검은색 미니원피스에 진분홍색 와이드 벨트를 졸라맸다. 20대에 못지 않은 몸매와 패션 감각을 보여주려는 ‘계산’이다.

 오수정은 아마도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었을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그녀가 입은 의상은 펜디 제품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칼고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게 된 오수정은 어깨가 드러나는 오프 숄더 티셔츠에 화려한 러플 스커트를 걸쳤다. 이것 또한 루이비통 제품이다.

 그녀의 럭셔리한 의상도 의상이지만 주목할 것은 평범한 노처녀의 판타지다. 오수정은 호텔에서 행해지는 유명 스타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는 ‘된장녀’를 마음 속 깊이 품고 있다. 이 드라마 때문에 엄정화에게 요즘 붙은 수식어는 ‘대한민국 노처녀’. 집에서는 비록 낡은 추리닝을 입고 라면을 먹을지언정, 밖에서는 최고급 명품에 비싼 와인을 마시고 싶은 그녀. 드라마 속 엄정화의 의상이 유난히 색감이 강하고 화려한 것은 그 안에 감추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패션 칼럼니스트(명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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