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 어음,회사채 발행때 복수평가 의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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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신용평가제도란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고,금융기관.기업.투자자들에게는 외면당하고 있는 제도다.그러나 개방 시대에 우리 금융의 선진화를 위해서나,또는 신용사회의 정착을 위해서나 가장중요한「밑바닥 얼개」가 바로 신용평가제도다.정부 가 더 이상 놓아두거나 미루다가는 안되겠다 싶어「신용평가제도 개편 방안」을내놓은 것을 계기로 신용평가제도에 대한 특집을 꾸며본다.금융의선진화는 이런데서부터 하나 하나 쌓아올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무부는 지난 85년부터 도입됐으나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는 신용평가제도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종합방안을 18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복수평가제가 도입되며▲증권관리위원회가 신용평가기관의 등록및 업무취소.정지등의 권한을 행사하며▲평가 결과가 공개되는 한편▲평가수수료는 자율화된다.
재무부의 이같은 방침은 현재의 신용평가제도로는 금융자율화.개방화를 추진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평가 시장」자체가 개방(94~95년에 1단계로 외국기관의 국내 사무소 설치)을 앞두고 있어 국내신용평가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는 위기 의 식에서 나온것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해외증권이나 담보없는 어음,보증없는 회사채를 발행할 때 1개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만 평가를 받으면 됐었으나 앞으로는 2개 기관으로부터 동시에 평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보다 정보가 어두운 신용평가기관의 분석을 어떻게 믿고 기업에 돈을 내주겠는가.』은행.투금사등 금융기관의 기업체심사담당자들이 신용평가기관에 대해 흔히 보이는 반응이다.
국내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금융기관의 不信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다「구조적」인 것이다.
1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감안하더라도 신용평가제도가 자리잡기에는 현재의 금융관행등 경제.사회.문화적인「관행」과 신용평가「제도」와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정보 공개.유통.수집.분석의 폐쇄성=현재 우리나라에는 한국신용평가.한국신용정보.한국기업평가등 3개 신용평가기관이 활동하고 있으나 우선 이들이 전문기관 치고는 정보수집 능력에서 상당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기업들은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기관에 요구자료를 꼬박꼬박 대주며 기는 시늉을 하다가도 신용평가기관에 대해서는 자료협조를 한사코 거절한다고 관계자들은 토로한다.
이 때문에 평가기관이 활용하는 자료란 기껏 결산보고서나 증시공시,신문스크랩등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금융기관.평가기관.기업과의「먹이 사슬」=금융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신용평가를 받을 기업 수 자체가 한정된 상황에서 3社의 영업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정작 엄하게 평가를 받아야 할 기업이 영세성과 적자의 수렁에서 헤매는 이들 평가 기관에 대해 수백만원의 수수료를 빌미로 오히려「上典」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회계「인프라」不在=특히 粉飾결산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등「회계 인프라」가 열악한 우리 실정에서 결산서로 기업의 신용을 분석한다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장님 코끼리 만지기」나 다름없다. ▲전문 인력 부족=뿐만 아니라 일의 성격상 12월 결산 법인의 결산서가 쏟아지는 3~5월 중에 수백건의 평가작업이몰리는데 한 평가회사당 30여명 남짓한 평가인력으로는 올바른 평가를 하기에 너무 벅차다.
▲신용평가에 대한 不信=이처럼 기업을「귀한 손님」으로 모시다보니 처음부터 실제보다 후한 등급을 주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고기업의 경영 내용이 나빠지더라도「타사에 손님을 뺏길까봐」등급을낮춰 조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신용평가회사 사람 들도 인정하고 있다. 정보부족 상태에서 1년에 한번씩 등급조정을 하는데 안주하다보니 기업의 상황변화를 제때 포착못해 A,B등급을 받은 기업이 부도에 몰리는데도 평가기관은 이를 모르는 해프닝이 생기기도 한다.
▲담보대출 관행=평가제도가 활성화되지 않는 더 큰 이유는 금융계가 만성적인 자금초과수요 상황에 길들여져 대출때 신용보다는담보를 챙기는 관행을 유지해온데 있다.담보를 맡길 기업이 줄을서 있는데 굳이 믿기 어려운 신용등급을 보고 돈 떼일 위험을 감수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그래서 현행 신용평가제도의 문제점은「신용을 중시하지 않는 경제.사회적 풍토」라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접근,단계적인 해결책이 모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李在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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