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反시장주의 확산을 경계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얼마 전에 있었던 경제학자들의 시국선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근 한국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걱정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부지불식간에 우리 사회에 팽배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그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몇몇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경제문제에 경제논리를 최대한 배제하려는 시도들이다. 예를 들어 농업개방, 부동산, 신용불량자 처리, 그리고 노사문제 등의 경우 비록 정치.사회적인 함의가 큰 문제들이긴 하지만, 그 근본은 역시 경제문제들이다. 그러나 최근 이들 민감한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제논리보다 정치적 고려 및 타협이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둘째, 비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조금의 경제논리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인식이다. 특히 교육.복지.환경, 그리고 대중문화 등의 분야에 경제논리의 접근을 단호히 배척하고, 결과적 평등 및 무조건적 보호를 주장하는 움직임들이 있다. 이들은 경쟁 및 개방의 도입을 신자유주의적인 발상이라며 매도하고, 경제논리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경쟁력과 효율성의 증가효과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분야에는 각종 시민단체들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으며, 참여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현 정부는 이들의 우후죽순적인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마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표상인양 이들의 행동을 부추기고 있다.

셋째, 가장 안타까운 현상 중의 하나로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각고의 노력으로 이룩한 경제개혁의 성과를 부정하고, 한국 경제의 구조를 다시 과거로 회귀시키며 또한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다시 경직화되고 과격해지는 노동시장이 그러하며, 점차 배타적이 돼 가는 외국기업에 대한 시각이 그러하다.

특히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해 오히려 정부의 역할이 점차 비대해지는 점이 그러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문제의 해결을 정부에 의지하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으며, 정부 역시 그러한 역할을 기꺼이 자임하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넷째, 기업가 정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식이다. 기업가들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며, 자신의 창의성과 자본을 투입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정상적인 시장경제체제 아래에서 이와 같은 도전이 성공했을 때 이들에게 높은 보상이 지급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과정을 무시한 채 무조건 시장이자율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은 모두 투기꾼으로 모는 경향이 있다. 과연 이러한 사회분위기 아래에서 어느 기업가가 많은 위험부담을 지고 새로운 사업에 자신의 노력과 자본을 투자하려 할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세계경제의 회복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투자열기가 아직 살아나지 않는 것은 다분히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한 측면이 강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왜곡된 인식들이 퍼지게 된 것일까. 일부에서는 97년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남발 속에서 사회의 불평등도가 심화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서 필연적으로 나온 대응이라며 상기한 인식들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경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각종 비정부단체 활동 및 교육활동 등을 통해 일궈낸 의식개조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잘못된 정책은 수년에 걸쳐 고칠 수 있고, 잘못된 경제구조 역시 10여년의 구조조정 노력을 거치면 고칠 수 있다. 그러나 그릇된 인식은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만 고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지금부터라도 청소년들에 대한 올바른 경제교육의 강화와 반시장경제적 인식을 지니고 있는 일부 지도층의 인적 쇄신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이두원 연세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