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 코너] "역사 속 인물 저렇게 생겼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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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seoulmoa.or) 1층 전시실에 들어서자 강렬한 붉은색 비단옷을 입은 여인네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증명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과 같다. 그러나 뜯어보면 초승달 모양의 눈가에 생긴 잔주름과 곱게 빗어 넘긴 반백의 머리가 정겹게 느껴진다.

미동도 하지 않고 우리와 눈 싸움을 하던 그 중국 여인네는 우리가 그 자리를 뜨든 말든 관심이 없는 듯했다. 초상 속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가는 것 같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지난해 12월 23일 마련해 올해 3월 14일까지 계속하는 '위대한 얼굴-한.중.일 초상화 대전'.

조선 후기부터 근대까지의 초상화 36점, 중국 한대부터 명.청시대까지의 황제와 고위 관료 등 국보급 대형 초상 중심의 인물화 56점,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되는 일본 근대기 초상화 10여점 등 1백30여점의 삼국 초상화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전시회는 동일한 문화권이면서도 저마다 고유한 개성을 구현해온 동아시아 삼국 문화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조선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최덕지 초상'(1455년.보물 594호)도 일반인들에게 처음 공개된다. 고종과 순종 황제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초상, 이항복.이색.황희.최치원 등 다양한 역사 속의 인물들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형식이 비교적 단순하며 그 내용이 단아하고 소박하다. 이에 비해 명.청대 '문관 초상', 청말~20세기 초 '왕씨 선세 초상' 등 중국 초상들은 그림의 주인공뿐 아니라 옷과 장신구.배경 가구까지 자세히 묘사해 화려한 면모를 보여준다.

일본 초상화는 우리나라나 중국과 달리 인물의 기질이나 신분을 표현하기 위해 변형과 과장을 한 것이 특징이다. 17세기 '소에이코 구로다 다다유키상'과 19세기 '구로다 조스이상'등이 대표적이다.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분칠을 하고 입술도 시뻘겋게 칠했다. 거기에 소매 폭이 아주 긴 기모노(일본의 전통 의상)를 입은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미술관을 나설 때 빠르고 간편하며 선명한 사진이 가득한 요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초상화 작품들을 감상하며 잠시나마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 평온했다. 02-2124-8944.

김금미(설월여고2).김이민경(충주여고1)학생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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