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파 이승학, 승부구는 '효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이승학이 5일 잠실야구장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주 무기인 슬라이더를 던지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마이너리그 시절 허리 수술 뒤 구속이 떨어지자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갈고닦았다. 이승학은 "새로 배운다는 신인의 자세로 뛰겠다"고 말했다. [두산 베어스 제공]

프로야구 두산의 이승학(28)은 '왕발'이다. 300㎜짜리 야구화가 국내에 없어 동갑내기 친구이자 발 사이즈까지 같은 최희섭(KIA)에게 꾸어 신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선 표준이었다"고 했다. 사이즈부터 '한국적'이지 못해 단국대 1학년 때 일찌감치 미국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뽑혀 갔던 이승학이다.

그가 2007년 한국 프로야구에서 '복귀파 1기'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

◆두산에 굴러온 복=4일 두산전을 앞둔 KIA의 서정환 감독은 "두산은 투수 복도 많다"며 부러워했다. '원투 펀치' 리오스, 랜들이 아니라 이승학 얘기였다. 이날 이승학은 5와3분의1이닝을 5피안타.3실점으로 막고 시즌 5승(1패)째를 올렸다. 4월 5일 두산과 계약하고 뒤늦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평균자책점 2.34로 봉중근(5.75.LG), 송승준(4.12.롯데) 등 복귀파 투수 중 최고다. 더구나 이승학은 이들 중 유일하게 포스트시즌에서도 뛸 수 있다. "미국에서도 6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은 한 번뿐"이었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빅리그 꿈을 접다=부산공고 시절인 2000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MVP에 오른 이승학은 이듬해 120만 달러에 필리스 유니폼을 입었다. 3년 만인 2004년 트리플A에 입성하며 동료의 부러움을 샀지만 거기까지였다. 허리 수술로 구속이 떨어졌고, 자신보다 확실히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올라갈 때마다 울분을 느껴야 했다.

지난해 빅리그의 꿈을 접고 귀국했지만 올해 초 해외파 특별지명에서 고향팀 롯데는 그 대신 송승준을 택했다. 겨울 훈련을 하지 못한 데다 두산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체중도 7㎏나 빠졌다. 하지만 "코치들이 상세히 지도해 줘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미국 코치들이 그렇게 해 줬다면 빅리그에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올겨울 제대로 훈련을 받고 최고 투수 자리를 노리겠다"는 포부다.

◆어머니 뒷바라지는 내가=이승학의 어머니는 대학생이다. 56세에 부산여대 사회복지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경남 남해 출신으로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였던 어머니는 '공부에 한이 맺혀' 가난한 형편에도 이승학을 프로 대신 대학에 진학시켰다. 그가 학업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떠나자 어머니 본인이 학업의 길에 들어섰다. "고등학교 다닐 땐 시험에서 한 문제 틀렸다고 짜증을 내시더라. 학생회장까지 하셨다"고 혀를 내둘렀다. 어머니의 꿈은 졸업 뒤 청소년 상담 일을 하는 것이다. "올해 돌아가신 아버지께 한국에서 뛰는 모습을 못 보여드려 한스럽다"는 이승학은 "어머니만이라도 원하는 일을 하도록 뒷바라지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