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바다」 발언후퇴 인니에 중재요청/다시 대화신호 보내는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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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벼랑끝 전략」으로 대미협상 추구/긴장 높여 “내부단합” 노린듯/남북대화로 이어질진 불투명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핵문제 타결에 중재역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고,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 북측 부대표 최성익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이 12일 평양방송의 좌담회에서 『「서울불바다」 발언은 남측 당국에 의해 왜곡됐다』고 한발 빼는 등 「대화기조」로 선회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 주목된다.
○“일괄타결” 주장
북한은 3월19일 박영수 북측 대표단장의 「서울불바다」 발언이래 시간이 지나면서 비난수위를 낮춰왔다. 「서울불바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실천」 발언 등으로 벼랑끝 전략을 펴던 북한이 화전 양면전술에서 대화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엔안보리가 지난달 31일 북한에 추가 핵사찰 허용을 촉구하는 의장성명을 채택,압력을 가하고 갈등국면이 계속되자 북한이 다시 대화로 기울게 됐다는 풀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화선회 신호를 본질적인 태도변화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북한은 외교관들의 입을 통해 줄곧 핵사찰 문제는 3단계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일괄타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해왔기 때문이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고위관계자가 지난달 29일 『NPT 회원국으로서 7개 신고를 핵시설 전체에 대한 전면사찰을 받는 문제를 3단계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일괄타결해야 한다』면서 미국에 북한과의 대화재개에 전제조건을 붙이지 말라고 주장한 것이나 이에 앞서 27일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이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남북 특사교환을 전세계로 하지 않는다면 추가사찰과 관련,미국과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이 그 예다.
○비동맹외교 강화
또한 적어도 3월19일 「서울불바다」 발언은 계산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당시 한미가 남북한 특사교환을 3단계 북­미 고위급회담의 분명한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팀스피리트훈련 재개 ▲패트리어트 미사일 반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대북압력을 강화하자 북한은 자신의 생각대로 북­미 3단계 회담이 열리기 어렵다고 판단해 남북 실무접촉도 깨뜨리려 했다.
또 대남 강경발언으로 긴장·위기상황을 조성해 미국의 양보·협상을 끌어내려 벼랑끝으로 내몰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전쟁불사」 운운하며 위기의식을 고취해 김정일 중심의 내부단합에 나선 측면도 있다.
이렇게 볼때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처음부터 미국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음은 분명하다.
북한의 인도네시아 중재요청은 인도네시아가 미­북한 대화를 지지하고,5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될 예정인 비동맹 외무장관 회의에서의 영향력도 크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전후로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이 모여있는 비동맹국가 모임에서 지지를 획득하려는 외교적 움직임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북한의 최근 시그널들을 볼 때 파국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기조로 선택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군사적 압박 느껴
대화중단후 주한미군의 전력이 증강되어 군사적 압박을 느끼게 되고,중국도 더이상 방패역할을 하기 어려움을 말하며 대화해결을 강조하고 있고,재사찰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유엔안보리가 경제제재 등 더 높은 단계로 옮아갈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안보리의 또다른 조치 이전에 미국·IAEA와 핵사찰의 미진한 부분과 관련,협상을 시작하면서 북­미 3단계 회담을 가능토록 해 「일괄타결」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문제와 연계해 남북대화에 성의를 갖고 임할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11일 「전민족대단결 방도를 모색하기 위한 민족대회」의 8월15일 소집을 제안하고 나온 것은 이같은 의문을 짙게 해준다.<유영구·최원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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