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체격.환경.가난 원동력-세계 육상계 케냐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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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케냐가 세계 육상을 망가뜨리고 있다.』 지난달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94세계크로스컨트리선수권대회가 케냐의 8연속종합우승으로 마감된 뒤 주최측은 이렇게 쑤군거렸다.
6개종목중 5개종목을 휩쓴 케냐의 검은 돌풍을 잠재우지 않으면 승부의 묘미가 사라질 것이라는 장삿속에서 나온 볼멘소리였다.개중엔 아예『육상을 살리기 위해선 케냐의 출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소리마저 있었다.
그러나 케냐 돌풍이 갑자기 불어닥친 것은 아니다.지난해 8월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벌어진 93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케냐는 8백m(파울 루토.1분44초71).5천m(이스마엘 키루이.13분2초75).3천m장애물경기(모제스 키프타누이.8분6초 36)등남자 중거리를 석권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길버트 세이 감독의 말마따나「이미 떠난 스타의 퇴장을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샛별들이 속속 출현,각종 세계대회를 집안잔치로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미국.러시아등 육상선진국들처럼 체계적인 선수발굴및 훈련시스팀이 정립돼 있지도 않은 케냐가 특히 중장거리 종목에서 발군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선 군살 한점 없이 쭉 뻗은 몸매에 하체가 긴 케냐인들의 신체적 특성이 육상에 안성맞춤이라고 입을 모은다.
엉덩이가 좁고 위로 치켜올려져 있는 것도 스피드를 내는데 좋은 체형이라는 설명이다.특히 케냐 육상 스타들의 산 실로 알려진 칼렌진族은 이같은 특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보다 큰 이유는 케냐인들의 삶 자체에서 찾아지고 있다.다른 나라 선수들은 장거리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 캠프를 차리고 훈련하는등 법석을 떨고 있지만 케냐인들은 대부분 해발 2천m이상의 가파른 산악지대에 서 생활하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지불식간에 고된 육상훈련을 하는것이다. 게다가 2천만 국민 대부분이 전근대적 농업과 목축업에종사하는 가난한 케냐인들에게 육상이 일확천금을 가져다줄 거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점도 그들의 발을 더욱 바쁘게 만들고 있다.
이번 부다페스트대회에서 신발이 없어 맨발 질주 끝에 여 자주니어부를 석권한 체비요트 케이타니도『돈을 벌기 위해 달린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타고난 체격과 열악한 생활환경,그리고 찌든 가난이야말로육상계에 불어닥치고 있는 케냐 돌풍의 원동력인 셈이다.
〈鄭泰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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