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정윤재 통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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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노무현(사진(左)) 대통령은 4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다가 중간에 퇴장했다. 허리 통증 때문이다. 대통령 당선자 시절 수술을 받았던 바로 그 부위라고 한다. 노 대통령은 회의 시작 전에 "최근 허리 컨디션이 안 좋아져 제가 먼저 실례할 수 있게 부처 보고를 먼저 해 달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안에선 정윤재(사진(右)) 전 의전비서관 문제를 들어 마음고생이 몸의 통증을 부른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정 전 비서관은 부산대 학생회장 시절인 1986년 운동권 학생으로 변호사인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이래 20여 년간 곁을 지켜왔다. 88년 13대 총선 당시 대중연설 경험이 없는 노 대통령에게 날계란과 식초를 먹여가며 웅변 연습을 함께한 일화도 있다. 이런 정 전 비서관을 노 대통령은 사석에서 "윤재야"라고 부를 정도다. 그런 '윤재'가 도덕성을 최고의 정치 자산으로 생각하는 노 대통령에게 치명상을 줄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가장 가까운 참모가 임기 말 역대 정권에 등장해 온 권력 비리 의혹의 장본인처럼 돼있는 상황을 지켜보는 노 대통령의 심경이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깜도 안 되는 의혹"(8월 31일 한국 PD연합회), "꼭 소설 같다"(3일 방송의 날 기념식)며 언론을 통해 제기되는 잇따른 의혹이 근거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 관련 기사들을 일일이 챙겨 보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청와대 인사들은 정 전 비서관이 직접 총선(2004년)에 출마하고,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의 선대본부장(2006년)을 맡는 등 부산 지역에서 현 정부 출범 뒤 마당발 정치인으로 활동해 온 만큼 "혹시"하는 마음으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부산의 지역 정계에 오래 전부터 잔뼈가 굵어 온 정 전 비서관이 꼭 김상진씨 건이 아니더라도 다른 건으로 꼬투리가 잡힐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걱정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천호선 대변인은 3일 정례브리핑에서 "(언론이)한 기업가가 벌여놓은 일 전체에서 의혹으로 발전시키고, 마치 정 전 비서관이 관련된 듯 보도하고 참여정부 전체와 연결하는 건 옳지 않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에 따라 범여권 인사들 사이에선 노 대통령 당선의 공신인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정무분과 전문위원을 맡고도 청와대에 입성하지 못한 얘기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당직자는 "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도덕성을 강조해 386 참모 중에서도 정치인은 가급적 배제했다"며 "이 과정에서 386 참모들의 군기반장 역할을 해 온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이 부산 사상구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던 정 전 비서관의 청와대 진입을 만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 전 비서관은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이해찬 전 총리의 비서관(민정)으로 총리실에 진입했고, 대통령 임기를 1년 여 남겨 놓은 지난해 8월에야 비로소 천호선 의전비서관의 후임으로 청와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 당직자는 "지금 돌이켜보면 이 실장의 판단이 맞았던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대선이 있는 해,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 전 비서관을 마냥 감싸고 돌 수만은 없다는 데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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