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비서실>170.6共의 서막-金容甲 정면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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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절대 부패한다고 단정하는 근거중 하나는 절대권력자는 결국에 가서는 귀와 눈이 멀기 때문이다.절대권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기에 주위의 누구도 그 의지를 거스르는말과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全斗煥대통령 역시 절대권력자였다.보통인간은 한번 잡은 권력을놓고 싶어하지 않는다.권력에 대한 본능적인 의지때문일까.그럼에도 정권교체과정에서 절대권력자의 의지를 거스르더라도『권력을 놓아야한다』고 말할 수 있는 諫臣이 필요하다.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의 정권교체과정에서 이같은 諫臣의 역할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金容甲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그는 87년초 盧泰愚대통령만들기 모임에 참석,6共 탄생의 공신이 됐던 軍출신 여권 핵심인사중 한사람이다.九重深 處인 청와대의 수석비서관이기에 李春九선거대책본부장이나 安武赫안기부장만큼 일반의 주목을 받지 않았지만 그는 이들 못지않은 역할을 해낸 숨은 공신이었다.
어려운 총대메기에 자주 나선 것은 그의 성격탓이 크다.좋게 평가하자면 그는 한마디로 말보다 행동이 앞설 정도의 소신파다.
이를 낮춰 평가하자면 돈 키호테라는 얘기다.자신이 만신창이가 될게 뻔한데도 거대한 풍차를 향해 용감하게 돌진한 다.이런 성격은 6共 탄생이후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성격은 全대통령이「남자답다」고 높이 사주는 부분이기도하다.그는 안기부 기조실장을 끝내고 미국 유학중 全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민정수석에 발탁됐다.
金容甲수석은 취임 첫 보고부터 이같은 全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했다. 86년 4월19일 토요일.
金수석은 가벼운 점퍼차림에 운동화를 신고『대전으로 놀러가자』며 부인과 함께 집을 나섰다.全대통령은 이미 2주전 유럽 4개국을 순방하기 위해 떠나고 없었다.오후2시 그가 도착한 곳은 대전 충무체육관.신민당의 개헌추진위원회 대전시지부 결성식이 열리고 있었다.요란한 스피커 소리와 몰려드는 인파의 웅성거림.
金수석은 부인에게『여기 이 전봇대 옆에 가만히 있어야돼.내가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가 올텐데,만약 1시간이 지나도 안오면 경찰에 신고해』라고 말하고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의회정치가 실종된후 벌어지고 있던 당시의 가파른 場外정치는 흉흉한 민심의현장이었다.청와대 민정수석이 현장시찰을 위해 뛰어들기는 사지를가는 일 만큼이나 위험했다.
그리고 그는 21일 全대통령이 귀국한 며칠뒤 독대했다.
『각하,제가 신민당의 개헌추진집회에 다녀왔습니다.』 金수석의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全대통령의 꾸중이 터져나왔다.
『뭐라고.당신 무슨 짓 한거야.대통령 수석비서관이 그런데 갔다가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도 몰라.』 金수석은 예상했다는듯『각하,1시간만 아무말 마시고 들어주십시오.현장을 보지않고 올바른 민심을 읽을수 없었습니다』라고말한뒤 보고를 계속했다.의외의 정면돌파방식은 全대통령에게「충성심」으로 호감을 샀다.
그는 비슷한 방식으로 6.29선언에도 결정적으로 공헌 했다.
그는 명동성당 시위가 한창이던 6월12일에도 시위현장을 찾았다.아침 일찍부터 하루종일 성당주위를 돌면서『조작된 민심이 아닌가』하고 살폈다.심상치 않았다.장사를 해야할 상인 들이 장사를걷어치우고 길가에 나와 구호를 외쳤다.
『더 볼 것 없다.』마음속으로 직선제 불가피 결심을 굳힌 그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주위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직선제에서 盧泰愚대표의 당선가능성을 타진했다.
마침내 필승의 확신을 굳힌 14일 오전 金수석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치안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朴英秀비서실장.康祐赫정무2수석.李鍾律공보수석등을 불러세웠다.
『시국 대처방안의 결론이 뭐냐』고 물은뒤『내가 고심한 결론을말하겠다』며 그는「직선제수용 불가피론」을 펴면서「양金씨 동시출마면 필승」을 주장했다.이견이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문제는「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였다.
金수석이 자진했다.
일단 朴비서실장이 구두로 金수석의 주장을 보고하고 16일에는문서화된 정식보고서로 전달했다.
金수석의 건의 이전에 이미 全대통령이 직선제수용을 결심했는지여부는 불확실하다.어쨌든 全대통령은 다음날인 17일 저녁 盧대표를 불러 직선제수용방안을『검토해 보라』는 정도로 제시했다.
이어 18일 오전9시 朴비서실장이『金수석이 직접 보고드리라』며 보고시간을 잡았다.金수석은 全대통령을 확실히 설득하기 위해대통령의 보안사령관시절 얘기로 시작했다.
『각하,각하가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때 집무실에「必生卽死,必死卽生」(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고,반드시 죽으려 마음먹으면 산다)이라는 李舜臣장군의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잘못하다가는 金日成에게 정권이 넘어가게 생겼습니다.다른 방법이 없습 니다.직선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두가지쐐기를 박았다.全대통령이 가장 걱정하는 大選승리여부와 퇴임후 안전문제다.
***26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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