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 헌신짝같이 버리는 게 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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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퇴임식을 마친 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청사를 떠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최승식 기자]

"벼슬은 갈리게 마련이니 갈려도 놀라지 말고, 잃어도 연연하지 말라. 벼슬을 헌신짝같이 버리는 것이 옛사람의 의리다."

김성호(57) 법무부 장관이 3일 퇴임식에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해관(解官.관직에서 물러남)편'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식장에 있던 법무부 직원들이 일순 숙연해졌다. 권력 핵심과의 '코드' 불일치 논란 속에서 자진 사퇴하는 자신의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정부과천청사 지하대강당에서 진행된 퇴임식에서 김 장관은 "연꽃이 더러운 진흙 속에 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고 깨끗함을 지켜가듯 청렴과 절제된 생활을 견지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 "부귀도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빈천도 그의 지조를 변하게 하지 못하며, 무력(武力)도 그의 뜻을 꺾지 못하는 사람이 대장부"라는 '맹자'의 구절을 읊기도 했다.

김 장관은 7월 말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 "선거법 9조(공무원의 선거 중립성을 규정한 조항)가 위헌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발언(6월 11일)으로 경질설이 퍼졌을 때였다. 이 말은 선거법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과 대립된 것이었다. 김 장관은 검찰의 한나라당 대선 후보 관련 수사에 대해 "대선 정국에서 검찰이 선거에 깊숙이 휘말리는 모습은 적절치 않다"(본지 7월 11일자 인터뷰)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그가 사표를 내자 곧바로 수리했다.

김 장관은 "우리나라 기업이 국민경제에 기여한 공적은 정당하게 평가돼야 하며 폄하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노력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삶의 질은 상상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386 세력과 갈등을 빚기도 했던 친기업적 소신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발언이었다.

경남 남해 출신의 김 장관은 1974년 사시(16회)에 합격해 대구지검장과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이상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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