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유럽 배낭여행후 책 펴낸 김정명씨와 보광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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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른이 되어 가는 아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힘은 들겠지만 함께 다니는 동안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희망했다.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내게도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아버지

"여행에서 돌아와 남은 방학 한달 동안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기 어렵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아버지가 여행을 가자고 하시는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한다. 싱긋 웃으며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나를 안심하게 했다."-아들

지난해 여름 20여일간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온 대학교수 아버지와 고교생 아들이 여행 체험기를 최근 '부자유친(父子有親) 로드맵'(도서출판 동아시아)이라는 한권의 책으로 펴냈다. 앞의 글은 이들이 서문에서 밝힌 부자(父子)여행의 동기. 아버지의 '아들 사랑'과 아들의 '아버지 신뢰'가 저절로 느껴진다.

김정명(金正明.50.명지대 체육학부 교수.철학박사)씨와 金씨의 장남 보광(普光.16.민족사관고 1학년)군. 이들은 터키.그리스.이탈리아 등지를 둘러보며 함께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한 장(章)씩 번갈아가며 서술해 값진 추억록을 엮었다.

金교수는 "입시지옥인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고 있는 시기에 막상 아들에게 여행을 제의하기란 쉽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의 여행은 무엇보다 소중한 재산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보광군은 "나 역시 20여일이나 책상 앞을 떠나 있는다는 게 불안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역시 책에서,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값진 배움이 많았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확인했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지혜를 길렀으며,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고취시킬 수 있었던 것이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자식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와 자식 간에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소한 오해 등으로 인해 '나쁜 관계'가 형성될 위험이 있다. 金교수가 여행을 계획했던 것에는 이런 위험성을 사전에 타진해 보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金교수는 "그래도 다른 집 부자보다는 아들과의 이해의 폭이 넓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여행길에 오르니 의견 충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며 "그동안 몰랐던 자식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아들과 함께할 여행이 앞으로 몇번이나 더 있을까 생각하니 힘겨움마저 값지게 느껴졌다"며 부자 간의 여행을 적극 권했다.

보광군은 유럽의 관문이자 오리엔트 특급의 종착역인 터키에서 비잔틴 문명과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위대함을 맛보면서, 살아 숨쉬는 '신화의 고향' 그리스에서 철인(哲人)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의 거장들과 마르코 폴로.론다니니 피에타.줄리엣의 흔적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삶이 인생의 수필(隨筆)이라면 여행은 인생의 시(詩)라고 했다. 기회가 되면 올 여름, 또 한편의 시를 쓰고 싶다는 이들 부자의 마음은 벌써 이국(異國)의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글=김세준,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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