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공무원도 말할 자유는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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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외교통상부 장관과 외교 노선에 관한 갈등은 전혀 없었다." "일 잘하고 물러나게 돼 안타깝다." "학교로 돌아가더라도 정책에 관해 조언해 달라."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부를 떠나는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에게 건넨 말이다. 떠나는 사람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려는 의례적 언사치곤 지나치게 가식적이다. 대통령과 호흡도 맞고 일도 잘하는, 그래서 앞으로도 조언을 필요로 하는 외교 전문가라면 사표를 수리하지 말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尹전장관이 제출한 사표는 즉각 수리됐고, 대통령은 외교부 일부 직원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책임을 장관에게 물었다. 외교정책 수행의 실패가 아니라 부하 직원의 언행 관리 실패가 장관 경질의 사유가 된 셈이다. 법과 상식을 강조한 盧대통령이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장관을 경질했으니 정당한 처사로 보이지 않는다.

尹전장관이 盧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몰랐을 리 없고 이를 간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 간과한 것이 있다면 청와대가 공무원의 말할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 소속 여경이 盧대통령의 사생활에 관한 소문을 입에 담았다는 이유로 인사 조치됐고, 군 당국이 일부 군인을 대상으로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을 삼가도록 정신교육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의 말할 자유를 상대적으로 많이 허용했던 외교부를 단속하기로 한 청와대의 결정도 이런 일련의 조치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 호감세력이 노무현 정권의 지지층'이란 발언에 맞장구치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진을 탈레반에 비유한 외교부 간부 직원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에는 반대한다. 온갖 다양한 의견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 정도의 표현을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의 발언으로 보는 당국자의 언론자유에 관한 이해부족이야말로 묵과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하겠다. 공무원도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것이 아니거나 국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말할 자유를 누려야 한다.

盧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외교부 사태와 관련해 공직자들에게 "대통령의 노선과 정책을 존중하고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존중'이란 단어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 존중이란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강요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말할 자유를 제한하면서까지 대통령에 대한 존중을 강요하는 것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공무원들이 국가정책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지적은 백번 맞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의 인사조치는 정책수행 능력의 평가를 기초로 해 이뤄져야 한다. 공.사석에서 어떤 말을 했는가를 인사조치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반대 의견을 말하는 소신 있는 공직자들은 사라지고 아첨꾼들만 득실거릴 것이 아니겠는가. 말할 자유는 보장하되 업무의 성과를 갖고 공무원을 평가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외교정책이라도 완벽하기 어렵고 누가 정책을 입안했다고 하더라도 실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책에 대한 비판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 사이의 정책경쟁이나 정책갈등을 덮어두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NSC와 외교부 사이에 외교정책을 놓고 마찰이 있었다면 어떤 정책이 어떤 근거로 국익을 더 잘 보장하는지를 이성적으로 따져볼 수 있도록 공론화하는 것이 좋다. '자주외교'와 같은 선전 슬로건을 앞세워 국민 감정을 부추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공무원들의 기자 접촉을 무조건 언론플레이로 매도하거나 언론보도를 정보누설로 인식해 뒷조사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언론보도를 통해 정부정책에 관한 각계각층의 의견과 지혜를 수집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외교부 사태로 인해 공무원들의 입이 얼어붙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윤영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