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합쳐도 문화가 다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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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피크 트램은 외지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빅토리아 산정에 올라 홍콩 시내와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데다 1백년 넘게 무사고를 자랑하는 케이블카도 있다.

그런 피크 트램에서 홍콩 시민과 중국 관광객들의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발단은 춘절(春節.설) 연휴 사흘째인 지난 24일 오후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온 관광객 캉(康.25)모씨 가족.친지 10여명이 하산하는 길에 일어났다.

康씨 일행 중 두 명이 길게 늘어선 줄에 살짝 끼어들었다가 홍콩인 황(黃.44)모씨 가족과 시비가 붙었다. 黃씨가 "대륙인들은 매너가 없다"며 비난하자 康씨가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정초(正初) 즐거운 나들이가 순식간에 패싸움으로 변했다. 네명이 병원에 실려가고, 여섯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양측의 '줄서기 문화'가 달라 빚어진 충돌이다. 중국대륙에선 웬만한 새치기를 눈감아 준다. 한명이 슬쩍 줄을 파고들면 그 사람 일행까지 앞줄에 세워줘야 한다.

하지만 홍콩인들에게 줄 서기는 몸에 밴 질서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 6년이 넘었지만 이런 자세는 크게 변함이 없다. 질서의식과 준법주의, 민주주의를 보는 시각 역시 그렇다. 그래서 중국과 홍콩 간에는 갈등 요인이 적지 않다. 요즘 하루 5만~6만명의 중국 관광객이 몰려오는 탓인지 이런 '문화 차이'를 피부로 실감하게 된다.

홍콩 언론들은 중국 관광객들이 명품 가게에서 싹쓸이 쇼핑을 하거나 대로변에서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하는 꼴불견 장면들을 심심치 않게 보도한다. 거리에서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다 1천5백 홍콩달러(약 22만5천원)의 벌금을 내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심지어 중앙도서관에 와 휴식용 소파에서 코를 골다가 직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홍콩인들도 일인당 1백50만원 안팎을 뿌리고 가는 중국 관광객들이 경제의 활력소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홍콩식(式) 질서 문화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게 6백70만 홍콩인들의 속마음인 것 같다. '한 지붕 두 가족'인 중국과 홍콩 사이엔 작게는 생활질서에서 크게는 정치질서에 이르기까지 타협점을 찾아야 할 아주 많은 것이 놓여 있다.

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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