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향림(1942~ ) '종이학' 부분
우리 아파트 바로 위층엔 신혼부부가 세들어 삽니다
원양어선을 타고 결혼식 다음날 떠난 신랑을 기다리는
그녀는 매일 종이학을 날립니다
한두 마리 날아오르다가
수십 마리가 우리집 베란다에
떨어져 죽습니다 그중 몇 마리는 아직
허공을 날고 있습니다
날개 없는 학을 무엇이 날려주는지 모른 채
나도 마저 손 흔들어 줍니다
(중략)
불현듯 그대에게 날려 보낸 학 한 마리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베란다에 서서 학 접어 날리기. 날개 없는 종이학을 무엇이 날려주는지 모른 채 매일 매일 푸른 허공을 향해 종이학을 날리기. 학과 함께 푸른 하늘을 날다가 필경은 어느 먼바다를 달리는 원양어선 한 척과 만나기. 그물을 걷어 올리는 사내는 참치 무리 속에 낀 종이학 하나를 발견하겠지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것이 결혼식 다음날 떠나온 신부의 사랑의 징표인 줄도 모르고….
곽재구<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