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종이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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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향림(1942~ ) '종이학' 부분

우리 아파트 바로 위층엔 신혼부부가 세들어 삽니다

원양어선을 타고 결혼식 다음날 떠난 신랑을 기다리는

그녀는 매일 종이학을 날립니다

한두 마리 날아오르다가

수십 마리가 우리집 베란다에

떨어져 죽습니다 그중 몇 마리는 아직

허공을 날고 있습니다

날개 없는 학을 무엇이 날려주는지 모른 채

나도 마저 손 흔들어 줍니다

(중략)

불현듯 그대에게 날려 보낸 학 한 마리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베란다에 서서 학 접어 날리기. 날개 없는 종이학을 무엇이 날려주는지 모른 채 매일 매일 푸른 허공을 향해 종이학을 날리기. 학과 함께 푸른 하늘을 날다가 필경은 어느 먼바다를 달리는 원양어선 한 척과 만나기. 그물을 걷어 올리는 사내는 참치 무리 속에 낀 종이학 하나를 발견하겠지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것이 결혼식 다음날 떠나온 신부의 사랑의 징표인 줄도 모르고….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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