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가 학력 세습 부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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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고학력 부모를 둔 학생이 서울대에 더 많이 합격한다’ ‘강남학군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평준화 정책은 학력 세습(世襲)을 가져왔다’.

학원가에서 떠도는 이같은 속설(俗說)이 연구 결과로 입증됐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김광억(金光億) 교수 연구팀은 1970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대 사회대에 입학한 1만1천9백여명을 대상으로 가정환경과 출신지역·출신고 등을 분석했다. 사회대에는 정치·외교·경제·사회 등 9개 학과가 있다.

◆부자 아버지,전업주부의 힘=2000년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과 4급 이상의 공무원,대기업의 부장 이상 등 고소득 직군의 아버지를 둔 자녀 입학률은 만명당 37명으로 그렇지 않은 계층(2.2명)의 16배였다.85년에는 고소득직군 자녀가 8.2명,비고소득직군은 6.4명이었다.

또 전업주부 어머니를 둔 학생이 맞벌이 가정의 경우보다 높고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전업주부 만명당 자녀의 입학률은 2000년 8명이었으나 맞벌이 부부는 2명에 머물렀다.전업주부 가정의 소득이 높고 주부들이 자녀교육에 더 많은 신경을 쏟은 결과로 풀이된다.85년에는 전업주부의 자녀는 10.5명,취업주부의 자녀는 3.5명 합격했다.

부모가 고학력일수록 자녀가 서울대에 입학하는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아버지가 대학을 졸업한 수험생의 입학률은 아버지가 고졸인 수험생의 2.4배(85년)→3.3배(90년)→3.9배(95년)→3.9배(2000년)였다.

◆제도 바꿔도 강남은 건재=대졸 아버지를 두었더라도 서울 강남 학군(강남·서초·송파 지역)에 사는 학생이 타지역에 비해 많이 입학했다.2000년의 경우 강남학군 대졸자 자녀의 입학률이 전국 평균보다 23%포인트 높았다.강남학군의 서울대 진학률이 제일 높았던 1993년에는 서울 지역 출신 입학생의 반이 강남학군 출신이었다.

잦은 입시제도의 변화에도 강남학군 학생은 강세를 보였다.강남 지역 학생은 학력고사(82년)·논술고사(86년)·수능(94년) 도입 등 입시제도가 크게 바뀔때마다 입학률이 주춤했으나 곧 바로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

연구에 참여한 서이종(徐二鍾·사회학과) 교수는 “새 입시제도가 도입되면 초반에는 강남 지역 이외의 학생이 많이 입학하지만 1년만 지나도 강남 학생들이 사교육 등을 통해 새로운 제도에 적응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외국어고 등 특목고 출신(88∼2002년)의 대학 전학년 성적은 평균 3.31점으로 일반고(3.18)에 비해 0.13점 높았다.서울 출신이 다른 지역보다, 고소득 가정 자녀가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대학 성적이 좋았다.

◆“고교 평준화 정책은 실패작”=김광억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사교육을 줄이고 입시과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고교 평준화 정책이 실패한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고교 평준화 정책·쉬운 입시 문제 등이 사교육을 부추겨 저소득층 학생의 일류대 진학을 오히려 방해했다는 것이다.

金 교수는“그동안 정책입안자의 철학이나 이해관계에 의해 교육정책이 좌우되어 온 것이 현실”이라며 “교육을 정치·경제·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연구팀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28일 ‘입시제도의 변화: 누가 서울대학교에 들어오는가’라는 주제로 교내에서 심포지엄을 연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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