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의 View] 여자의 변덕을 무시하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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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당신 10년 전 그 일 생각나?”

남자들은 여자들과 싸울 때 가장 괴로운 것 중 하나가 여자의 놀라운 기억력을 마주할 때라고 한다. 몇 달 전도 아니고 몇 년 전 일을 기억하는 여자가 어떨 때는 무섭기도 하다.

“당신, 제발 지금 일어난 일만 가지고 얘기해”라고 남자는 여자에게 화를 낸다.

여자들은 별로 상관관계가 없을 것 같은 것들을 하나로 묶어 통합적으로 사고하면서 일을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남자들보다 본래 뛰어난 것을 어찌하겠는가?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남자의 두뇌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데 용이하다고 한다. 마치 타깃을 정해놓고 사냥하는 것처럼. 그러나 여자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순간 분석하고 적용한다.

여성의 이런 특성을 간파하면 여성의 까다로운 구매 습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쇼핑할 때도 여성의 상호연관성에 입각한 통합적인 사고는 그대로 적용된다.

어느 봄날 싸고 편안한 아들의 바지를 사려고 아내가 집을 나섰다. 아내는 백화점에 들어가 우선 세일하는 아이 바지가 없나 매대 쪽을 살폈다. 마침 1만5000원 정도하는 쌈직한 바지가 있었다. 그런데 막 계산하려는 순간 좀 떨어진 매대에 고가 브랜드가 세일하는 것이 보였다.

평소에 사주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 사입히지 못했던 바지가 60%나 세일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가보니 바지 하나가 3만원이다. 좀 전에 보았던 바지보다 두 배 높은 가격이지만 브랜드가 워낙 고가인지라 순간적으로 갈등을 겪게 되었다.

‘그래, 그래도 우리 아들 좋은 바지 하나는 있어야지.’ 결국 판매원에게 “9호로 하나주세요”라고 한 순간 또 고민에 빠졌다. ‘비싼 건데 아예 11호를 사서 좀 크게 입히고 내년까지 입혀?’ 그리고 다시 말한다. “이거 말고 11호로 주세요.”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언니네 아들이 얼마 전 입었던 바지가 이 브랜드였던 것 같다. ‘참, 그 바지 이제 작아서 못 입힐 텐데….’ 계산을 하려다 말고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언니 그때 얘기한 동민이 바지 있지? 그래, 그거. 지금 작아서 못 입히지? 그럼 언니, 대신 언니 아들 티셔츠 한 장 사다 줄게.”

결국 언니 아들에게 줄 티셔츠 한 장을 사서는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이렇게 핀잔을 준다. “바지 산다고 하더니 웬 티셔츠? 하여간 여자들은 종잡을 수가 없다니까. 변덕이 죽 끓듯 해요.”

그러나 이것은 여성을 심리학적 측면에서 분석해 보았을 때 절대 변덕이 아니다. 상호연관성에 입각한 통합적 사고에 의한 전문가적 판단이다. 그래서 여성은 불만을 말할 때도 지나간 과거까지 모두 통합해 판매사원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2000년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된 파코언더힐의 『쇼핑의 과학』이란 책을 보면 남녀의 서로 다른 구매습관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남성은 대포를 떠난 대포알과 같다. 남성은 상점을 총알처럼 빨리 쏘다닌다. 물건을 오래 보지 않고 물건이 어디 있는지 묻지도 않는다. 대개 남성은 목적지로 곧장 달려가 원하는 물건을 집고 순식간에 돈을 계산한다. 남성에게 가격표를 무시하는 행동은 남성다움의 상징이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은 구매의 욕구 단계에서부터 재구매 결정 단계까지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여성의 이런 구매 패턴을 모른다면 여성에게 물건을 팔 수 없다. 매출이 떨어진 후 실질적인 구매 결정자인 여성 무서운 줄 안다면 늦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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