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경제우선” 업고 두각(미 무역정책 중추 「NEC」: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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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 개방·대중협상등 입김/외교서도 「안보회의」 견제
최근 미국의 국가경제위원회(NEC)가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MFN) 연장문제 및 일본과의 무역협상을 계기로 무역정책뿐 아니라 외교기조를 결정하는 중추기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NEC는 최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대중 MFN 연장여부에 관한 회의를 열고 중국의 인권개선을 MFN 연장의 조건으로 내세운 미 국무부의 노선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NEC는 MFN을 취소할 경우 현재 4백억달러에 달하는 미­중간 무역뿐 아니라 미국의 관련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인권과 무역은 별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햇다.
NEC의 이같은 입장에 따라 미국정부내에서 그동안 대중 MFN 취소로 기울던 대세가 차츰 연장쪽으로 돌아섰고 마침내 로이드 벤슨 미 국무장관은 『중국의 인권문제는 MFN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개선을 요구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례는 핵심정책부서로 자리잡아가는 NEC의 새로운 위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함께 미국이 일본시장을 개방하기 위해 내놓은 슈퍼 301조 부활 및 수치목표 설정 등 일련의 조치 역시 NEC가 검토,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NEC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같은 NEC의 득세는 ▲냉전체제의 붕괴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우선정책 등 내외적인 요인에 의해 가속화됐다.
소련연방의 해체로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지자 미국은 외교노선을 안보중심에서 경제·무역중심으로 수정했다. 이에 따라 종래 안보상의 고려 때문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던 각국과의 무역마찰은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함으로써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될 외교의 핵심과제로 자리잡게 됐다.
이 때문에 부시행정부 때까지만해도 미소 양극체제를 바탕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국가안보회의(NSC)는 목소리가 줄어든 반면,NEC가 「경제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외교문제에까지 관여의 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행정부내 NEC의 우위는 클린턴정권 출범전부터 예견됐다. 대통령선거전 당시 클린턴 후보는 경제가 군사와 함께 국가안전보장의 요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NEC의 전신인 국가안전보장경제회의(NSEC)의 신설을 제창했다. 「경제안전보상」이라는 말이 보호주의적 이미지를 풍긴다해서 대통령 당선후 안전보장이라는 말을 빼고 명칭을 바꾸기는 했지만 클린턴이 집권전 구상했던 NEC의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NEC가 미일 무역분쟁을 계기로 입지가 강화된 것은 NEC의 구성과 운영방식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이는 ▲클린턴 대통령 자신이 NEC 의장으로서 직접 정책결정에 깊숙히 관계하고 있고 ▲주요 무역정책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NEC내 일부 핵심관료들을 중심으로 결정되고 ▲이것이 명령식으로 하부 행정기관에 전달된다는 점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이같은 정책결정 과정은 부시 행정부 시절까지 무역정책이 여러부처의 차관급으로 이뤄진 무역정책 검토그룹(TPRG)에서 결정,상부의 결제를 받던 하의상달식 방식과 비교해 훨씬 강력하며 신속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NEC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와 재무·상무·노동 등 각부 장·차관으로 이뤄졌지만,이 가운데 로버트 루빈NEC 위원장·보우먼 커터 NEC 부위원장·로저 앨트먼 재무부 부장관·로라 타이슨 CEA 위원장 등이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실세」로 알려져 있다.<이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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