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미래를 위한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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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22일에 있었던 美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쉰들러 리스트』로 감독상.작품상을 받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런 수상연설을했다. 『…지금 지구상에는 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35만명이 살고 있습니다.지금 텔리비전을 보고 계신 교육자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대학살의 역사를 감추지 말고 학교에서 가르쳐주시기바랍니다.현재 살아계신 35만명이 전문가가 되어 여러 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혼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진실된 역사를 가르쳐 주십시오.』KBS-TV가 시상식을 放映한 25일은 마침 金泳三대통령과 日王이 각각 韓日의 과거사를 언급한 만찬사를 교환한 다음날이어서스필버그의 연설은 마치 日本과 우리를 향한 호소처럼 들렸다.
유대인인 스필버그에게도 同族의 滅絶을 꾀한 나치에 대한 증오의 앙금은 남아있을 것이다.그러나 스필버그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진실된 역사를 가르쳐달라고 호소한 것이 한풀이를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그가 특히 교육자를 지칭해 호소한 것은 미래에있어서만은 그런 反人類的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韓日관계를 이룩하기로 한 현 시점에서 우리들이 日本에 요구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러한 것이다.아무리 과거보다는 미래라 하지만 이미 깊이 상처받은 세대가 과거를 말끔히 백지화한다는 것은 실제론 불가능하다.하나 자 라나는 세대는 다를 수 있다.
韓日의 새 세대가 「열린 마음」으로 만날 수만 있다면 구차스럽게 말을 고르지 않더라도 그들은 거리낌없는 다정한 이웃이 될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그들에게 「열린 마음」을 심어주느냐 하는것이다.그 「누구」는 다름아닌 우리들 韓日의 기성세대고 「어떻게」는 바로 역사교육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日王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은 못내 마음에 걸린다.日王은 24일의 만찬사에서 日王으로선 처음으로 「反省」이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이를 金泳三대통령은 순수하게 받아들여 『종전에는 사전을 찾아봐야 낱말의 뜻을 알 수 있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쉽게 풀이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용어로 반성을 표시했다』고 애써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러나 만찬사의 문맥을 뜯어보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戰後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 국민들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쌓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문장은 분명히 戰後부터 이제까지의 현재완료형이다.과연 2차대전후 日本국민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해 행동해 왔던 것일까.그렇다면 30년에 걸친 그 지루한 사죄표현의승강이도,교과서파동도,정신대문제도,사할린교포 문제도 없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차라리 日王의 만찬사가 과거는 과거라치고 이렇게 표현되는게 좀더 나 았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국민은 과거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신뢰와 우정을 쌓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日王 만찬사의 문맥대로라면 그들은 진작부터 깊은 반성에 입각해 신뢰를 쌓기위해 노력했던 것이고 그런데도 韓日간의 문제가 오늘 까지 풀리지않은 숙제로 남아있는 건 韓國의 책임이라는 걸 암시한 것이란 해석도 가능해진다.단어 하나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을 日本측이생각없이 문장을 작성했다고는 보지 않지만 韓日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런 해석은 曲解라고 치부해버리 자.
그러나 끝내 의구심이 남는 것은 과연 전후사에 대한 인식마저그렇게 모호하다면 더 오랜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기성세대의 역사인식이 달라질 수 없다면 아무리 미래를 위한 화려한 修辭를 동원해도 韓日의 미래가 달라질 수는 없다.새세대는 그들로부터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몇해전 수학여행으로 韓國의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던 한 일본 여고2학년생이 남긴 이런 감상문이 생각난다.『고문 장면을 보여주는 코너에서도 충격을 받았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우리들이 학교에서 진짜의 역사를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 이었다.』 ***歷史 바르게 교육해야 韓日관계의 미래가 긍정적인 것이 되려면 진실에 바탕을 둔 공통의 역사인식이 필수적이다.지난 90년 프랑스와 獨逸 학자 60여명은 7년간의 공동연구끝에「역사.
지리교과서를 위한 권고」란 교과서 기술지침서를 낸 바 있다.또독일과 폴란 드는 지난 76년 4년간에 걸친 교과서회의 끝에 26개 항목의 교과서내용 수정에 합의했다.
日本에 주어진 숙제는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바로 과거사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그를 바탕으로 韓日양국은 미래를 위한 역사를함께 새로 써나가야 한다.日本의 정책당국자.교사를 포함한 지식인들에게 스필버그의 호소를 다시 한번 들려주고 싶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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