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밴드 고군분투기 “작품 좋다” 입소문 … 매진 행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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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디션'엔 무엇보다 쓸쓸한 젊음의 방황이 생생히 그려져 공감대를 형성한다. 뛰어난 노래 실력을 과시한 이승현씨를 비롯 출연진의 열정이 가득하다. [오픈 런 제공]

“뭐라고요? 밤새 놀자구요? 좋습니다. 한번 달려 갑시다. 이야-”
 쿵쿵거리는 리듬, 속사포같은 기타 세션….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광봉을 흔들어댄다. 뮤지션은 이에 맞춰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돌린다. 관객도 몸을 들썩인다. 일체감, 그리고 공감대. 그 안에 젊음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홍대 앞 클럽? 아니다. 공연의 메카 서울 대학로의 풍경이다. 관객의 환호성은 무명의 한 인디 밴드를 향한다. 그런데 콘서트는 아니다. 바로 ‘오디션’이란 뮤지컬이다. 작품은 ‘복스 팝’이란 이름의 인디 밴드의 이야기다. 작품 안엔 그들의 음악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음악이 나올땐 콘서트처럼 활활 타오르다, 그들의 아픈 일상이 그려질 땐 모두들 숨죽인다. 정(靜)과 동(動)의 넘나듦 속에 ‘한국형 클럽 뮤지컬’이란 새로운 형식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눈물, 코믹, 그리고 감동

찾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던 이들에게 ‘선아’란 어여쁜 여성이 나타난다. 멤버간엔 묘한 경쟁심이 촉발된다. 티격태격하며 연습하는 사이, 각자의 과거 상처도 한꺼풀씩 드러난다. 멤버의 캐릭터는 선명하다.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신비한 기타리스트 찬희, 고등학교때 가출했지만 꿋꿋이 모두를 리드하는 베이스 준철, 뛰어난 작곡·노래 실력을 갖추었지만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는 병태 등. 최근 문화계의 트렌드인 ‘동성애 코드’도 간간이 비춰진다.

도전과 좌절, 그리고 희망. 사실 스토리는 상투적이다. 그러나 뻔한 얘기에 울림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극본을 쓴 박용전(33)씨는 20대 중반 실제 무명 밴드 멤버였다. 그래서 대사는 생생하고, 디테일은 정교하다. 박씨는 “공연보다 실제 생활은 사실 더 구질구질했다”고 말한다.

관객이 열광하는 건 바로 이 부분, 사실성이다. 관객 이현미(26)씨는 “불확실한 젊음의 방황이 꼭 내 얘기같다”고 말한다. 또 다른 관객 박경애(29)씨는 “콘서트의 흥겨움, 뮤지컬의 재미, 연극의 절절함을 모두 만끽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고 전했다.

#1년간 죽어라 악기 연습만

음악을 듣는 재미는 쏠쏠하다. 발라드에서 얼터너티브 록, 모던 록, 포크까지 다양하다. 출연진들은 평상시엔 연기를 하다 노래를 할땐 라이브 밴드가 된다. 기타리스트는 본래부터 연주에 달인이었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초짜들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을 위해 1년 이상을 악기 연습에 매달렸다. 특히 드러머 윤석원씨는 두달간 합숙 특훈을 받았다. 연기자 이승현씨는 “덕분에 음악에 대한 이해가 더 넓어졌다. 뮤지컬 배우로 성장하는 데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박용전-정승란 부부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박씨는 프로듀서·극본·작사·작곡·연출 등 창작과 관련된 일을 도맡았고, 정씨는 피아노 연주·기획실장 등 제작 안살림을 책임졌다. 정씨는 “제작 여건이 워낙 영세해 최대한 인건비를 아끼려는 전략”이라며 웃었다.

작품은 아쉽게 이번 주로 마무리되지만 오는 11월 중형 공연장(백암아트홀·420석)으로 옮겨가 앙코르 공연된다. 무대가 커진 만큼 작품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지, 초연때의 헝그리 정신이 변함없이 유지될 수 있을지, 뮤지컬 ‘오디션’의 진짜 오디션은 이제부터다.

최민우 기자

◆뮤지컬 ‘오디션’=7월초 180석 규모의 소극장(열린극장)에서 시작했다. 별다른 마케팅도 없이 출발, 초반 객석은 썰렁했으나 “작품 좋다”란 입소문 덕분에 지금은 대학로 최고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평일 객석 점유율 90%, 주말엔 통로까지 꽉 들어차며 120%의 점유율을 기록중이다. 9월 2일까지. 02-765-8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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