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시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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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물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으로 가장 감동적인 것은 미국 작가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닌가 싶다. 셋방살이 하는 가난한 부부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남편은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은 금시계를 팔아 아내에게 줄 선물로 아름다운 머리빗을 사고,아내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남편에게 줄 선물로 시계줄을 산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선물을 주고 받는 모든 사람들중에서 이들이 가장 현명했다』는 말로 작품을 마무리짓고 있다.
남편은 유일한 가보를 팔았고,아내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았으니 이들 부부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해야 마땅할텐데도 작가가 이들을 현명하다고 단정한 까닭은 서로 아름다운 마음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오가는 선물속에 서로의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으면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기뿐 선물의 의미는 퇴색해 버리고 만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오가는 선물은 전통사회로부터의 미풍양속에 바탕한 선물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세계 각국 로비이스트들의 각축장인 미국 워싱턴에서조차 한국인 로비이스트들은 현금이나 선물을 가장 잘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니 우리 사회에서 선물의 의미가 어떤 것인가를 대충 짐작할만 하다. 가뜩이나 친지간에 오가는 선물의 경우를 예외로 한다면 거의 모든 선물에 「반대급부」의 의미가 내포돼 있으며,그래서 각종 선거나 부정·비리에서 선물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주었으니 받아야 하고,준 것만큼 받아야 한다는 뜻이 들어있는 선물에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있을 턱이 없지 않겠는가.
최근 인천시장과 충남지사,그리고 서울의 몇개 구청장들이 관내 주민들에게 향응과 선물을 제공했다 해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도 내년의 단체장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혹 「반대급부」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살만한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이라는 야당의 주장과 통상적인 직무행위라는 여당의 반박이 맞서고 있으나 때가 때인 만큼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쓴 행위」(이하불정관)가 아니냐는 시각에는 어떻게 반박할는지 궁금하다. 「개혁지절에 웬 선물」이냐는 빈정거림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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