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33. 금요일의 댄스파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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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웁살라대학 본관 앞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학생들. 금요일의 댄스 파티는 또 다른 친교의 장이다.

500년이 넘는 전통의 웁살라대학은 학풍뿐 아니라 ‘노는 풍’도 여느 대학과는 확연히 달랐다. 매주 금요일 열리는 댄스 파티는 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기가 막혔다. 금요일 저녁이면 아주 넓은 학생회관에 정장을 차려 입은 남녀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도 연수 온 이후 금요일의 댄스파티를 알았다. 그 때 내 나이 26살. 물 설고 낯 설은 유학 생활에 찌들긴 했어도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몸으로 혈기왕성했다. 키도 176cm로 그렇게 작지는 않았다.

그런 내가 댄스 파티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댄스 파티는 우리나라로 치면 학교 향우회, 즉 지역별로 주최하는 식이다. 동시에 여러 지역 학생회가 학생회관의 대형 홀에 댄스파티를 열었다. 나는 ‘바름랜드’라는 지역의 학생회가 주최하는 곳엘 자주 갔었다.

첫 댄스파티에서 였다. 남녀 약 200여명씩 400여명 정도가 커다란 홀을 가득 메웠다. 오랜 만에 정장을 차려 입은 나는 마치 영화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나온 영화 ‘무도회의 밤’을 보는 기분이었다. 대부분의 백인 여학생들도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이나 비비안 리처럼 예뻐보였다. 그 당시 두 여배우는 세계 뭇 남성들의 가슴을, 제임스 스튜어트는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었다.

날마다 연구실에서 허름한 옷만 입고 일하다 오랜만에 양복을 입고 무도회장에 갔으니 그 기분은 요즘 젊은이들 말처럼 ‘짱’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무도회장에서 나는 두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나는 희귀한 동양인으로, 또 하나는 춤을 전혀 못추는 것이었다. 웁살라대학에서 한국 사람은 나 혼자였다. 춤이라고 해봐야 한국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추던 ‘개다리 춤’ 등 막춤 밖에 아는 게 없었다. 거기서는 그런 것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무도회에 참가한 남녀 학생들은 물 흐르듯이 잘 췄다.내가 구석에서 눈만 반짝이고 있자 한 멋진 여학생이 다가왔다. 춤을 추자고 해 “잘 출 줄 모른다”고 하자 걱정말라고 했다. 가르쳐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여학생의 손을 잡고 때로는 허리춤도 잡고 춤을 배우는데 스웨덴에 와서 그 동안 느꼈던 고단함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1년 정도 금요일의 댄스파티를 즐겼을 때다. 마침 웁살라에서 60km 정도 떨어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유학 온 내 또래의 한국인 친구가 내게 놀러왔다. 나보다 3년 정도 먼저 스웨덴에 온 사람이었다.

“댄스 파티에 가면 죽여줘. 저녁 식사를 얼른 하고 거기서 놀자구.” 우리 둘이는 정말 죽이 잘 맞았다. 나는 친구를 대접한다고 기숙사에서 마늘을 비롯한 온갖 양념을 꺼내 요리를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니 마늘을 먹고 갈려고 그래? 그러면 아마 여학생들이 다 도망갈 껄.”

나는 스웨덴 사람 뿐 아니라 독일 사람 등 유럽인들 대다수가 마늘 냄새만 맡아도 질겁을 한다는 사실을 그 때서야 알았다. 나는 1년 정도를 그것도 모르고 마늘을 넣은 음식을 푸짐하게 먹고 댄스파티에 갔었던 것이다. 그날은 마늘이 든 음식을 먹지 않고 갔다. 그 이후 무도회장의 ‘작업’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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