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동의보감 『익생양술』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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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집 센 노인의 50여 년 정성과 한 출판인의 집념이 토종약초 대전으로 빛을 보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전통 민간요법을 집대성한 『익생양술』(사진)이 그것이다. 저자인 권혁세(71·한국민간요법연구회장)씨는 평생 전국을 돌며 수집한 약용식물 1300여 가지와 민간요법 2만 가지를 이 책에 실었다. 권씨는 해방 전후 선친과 이정호 성공회 신부에게서 신기한 약초 처방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평생 전국을 찾아다니며 4만여 가지의 민간요법을 수집하고 빠짐없이 기록했다.

 이 책은 총 5권, 3800쪽으로 구성됐다. 1권은 약재편으로 1300여 동식물의 생태·약효·채취기간·취급요령·성미·독성여부·사용량·특징·적응증 등을 민간요법 효능과 함께 설명했다. 원색사진을 포함한 본초 사전으로는 국내 최초·최대로 꼽힌다.

 또 2~3권은 처방편으로 742가지 질병 증상에 따른 2만여 약용식물과 민간요법·처방 등을 담고 있다. 4권 조제편에선 민간과 사찰 등에서 비전돼온 신비의 약차요법 100여 가지, 식이요법 1000여 가지, 탕전요법 270가지, 단방·혼합 주침법 500가지를 다뤄 약초연구가와 생약개발자, 식품 및 제약회사, 한의사 등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정리했다. 특히 혼합주침법 및 식법 등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명문대가나 사찰에서 전래돼 온 비방. 토종 약초를 이용한 단방 처방은 사람의 체질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약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진 각고의 어려움도 많았다. 언론사와 출판계에서 활동해 온 남궁헌(55)씨는 2003년 재야 약초연구가인 권씨를 그의 며느리 김은기(한의사)씨의 소개로 만났다. 당시 권씨의 대학 노트와 A4 용지에 정리한 원고는 2.5t 한 트럭 분량. “색이 바랜 원고를 보는 순간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곧 출판사를 차리고 원고 정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은 쉽지 않았다. 약초의 정식 이름과 학명을 찾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거나, 계절에 맞춰 심산유곡을 누비며 선명한 사진을 찍는 일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3개월이면 끝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

 엄종희 전 한의사협회장은 “이 책은 국내 최초의 제대로 된 방대한 본초학 교과서”라며 “한의사들이 토종 약초를 이용해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을 담았다”고 말했다.

 남궁씨는 “독일·스위스·일본·미국의 신약연구기관에서 소식을 듣고 책을 구입했다”며 “선조가 남긴 지혜의 산물을 후손에게 남길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02-6012-4477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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