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맞는 전주시민의 이심전심/박영수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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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호남지역을 방문중인 김대중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 이사장은 18일 전주에서 전북도내 국회의원·도의원 및 지역인사들 50여명과 아침을 같이했다.
조찬은 전날 김 이사장을 만찬에 초청한 이 지역의 관계·언론계·문화예술계·종교계·재야인사들에 대한 답례형식을 취했다. 이 행사는 김 이사장의 강연회와는 달리 보도진을 물리친 자리에서 1시간여가량 진행됐다.
같은시간 숙소인 코아호텔 한식당에서는 옹기종기 모여앉은 시민들이 김 이사장의 호남방문을 화제에 올렸다.
『전주에 잘 왔어』 『정말 정치는 다시 안할건가』하는 얘기가 들려왔다. 재단은 김 이사장이 「지나친 환대」를 받는 것을 자제했지만 시민들의 관심은 이미 거기에 쏠려있는 것이다. 첫 방문지 이리에서 보이지 않던 환영 플래카드도 시내 몇군데에 걸려있었다. 또 원광대의 강연장에서 일일이 참석자들에게 패찰을 나눠줘 시민·학생들의 출입을 막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의문도 일부 나왔다.
재단이 우려한 열광적인 인파가 몰리지는 않았으며 그렇다고 반응이 작았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김 이사장이 정치에 몸담고 있을 때나 선거때처럼 열띤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랜만의 호남나들이를 환영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감회의 빛이 서렸다. 그것 김 이사장도 마찬가지인듯했다.
그래서인지 김 이사장은 이리·전주의 행사장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분위기에 젖어들기도 했다. 강연장에서 제일 먼저 꺼내는 화제가 왜 자신이 정계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김 이사장은 17일 저녁 숙소에서 행한 지역인사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호남행의 감회를 이렇게 밝혔다.
『과거 언제나 제가 이 고장에 올때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왔다. 그런 제가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이 고장에 왔다. 20년 이상이나 여러분의 막중한 은혜를 입고 보답은 못해 죄송한 마음을 금할길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치적인 부담도 없고 찾아와보니 날씨도 화창해 꼭 고향집을 찾는 심정으로 마음이 평화롭다. 대단히 기쁜 감정으로 여기에 왔다. 그런 저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이해하실 것이고 여러분의 심정 또한 저도 잘 헤아리고 있다.』
2백50여명의 청중들 가운데 고개를 끄덕이며 김 이사장의 얼굴을 응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숙연하지만 마음으로 공감하는듯한 강연장의 분위기가 흡사 김 이사장을 맞이하는 이 고장의 표정으로 느껴졌다.<전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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