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5부] 봄 (12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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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그림=김태헌]

그 날 밤 엄마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는 듯했다.

밤새 나도 뒤척였다. 막상 집을 떠나게 되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낯선 지방도시의 생활을 내가 적응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취소하고 서울 근교에 있는 대학에 다니며 토익 책을 들고 취직 공부를 하는 그런 대학생이 될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아니, 그건 싫었다.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싫은지는 분명했다. 겨울 해가 내 발치에 이르도록 자고 일어나보니 엄마는 집에 없었다. 벌써 출근하신 막딸 아줌마 말이 이른 아침에 외출하셨다고 했다. 무심히 컴퓨터를 켜보니 새 편지가 몇 개 도착해 있었다. 아이디가 낯이 익다 싶은 순간 그중 하나가 엄마의 편지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스물이 되는 딸에게, 라는 말로 편지는 시작되고 있었다.

“위녕, 잠이 오지 않는구나. 네가 스물이라는 생각, 네가 집을 떠나겠다는 말들이 뒤얽혀 엄마의 머릿속으로 많은 시간이 윙윙거렸다. 스물…, 참 좋은 숫자야. 기온으로 봐도 최적의 온도이고 사람의 인생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푸른 숫자…. 이 밤 엄마는 엄마의 스물을 네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너와 아빠 그리고 엄마의 인생은 아마 설명하기도 힘들 테니까….

엄마의 스무 살은 너의 스무 살과는 아주 달랐다. 그래 엄마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대학은 얼어붙어 있었어. 광주학살… 이라는 커다란 현대사의 상처가 서울에 있는 엄마의 대학에까지 어두운 그늘을 내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든지 아직 다 지워지지 않은 엷은 핏빛들이 선명했어. 가해자든, 피해자든, 혹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든 그 핏빛 그늘은 내려와 있었다. 연초록빛 낭만과 자유가 숨 쉴 거라고 생각했던 대학의 공간은 그렇게 붉었고 형사들과 프락치들이 무전기를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강의실에까 지 무전기를 든 형사가 들어와 교수가 혹여라도 자신들의 정권에 해로운 말을 하나 감시하는 분위기를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젠가 이런 말을 네게 했을 때, 너는 물었지.

‘엄마 우리나라 그렇게 후진 나라였어?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이 그런 짓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뒀어?’

엄마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 실은 통쾌했단다. 네 말이 맞았거든. 하지만 말이다. 그걸 그냥 내버려 두는 사람들과 그것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나라는 나뉘어졌고, 그리고 실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도 날마다 그렇게 갈라지고 있던 무렵이었다. 네 대답에 통쾌함과 동시에 엄마는 또 생각하고 말았단다. 이 모든 일들을 네게 설명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리고 그것은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대학 신입생 시절,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그리고 얼마간은 지적 허영심에서 엄마는 선배들이 나누어준 유인물을 받아들게 된다. 그 유인물 하나를 건네주기 위해 나보다 나이 두엇 정도 젊은 그들은 감옥으로 갔고, 모든 미래를 어둠으로 내던져야 했다면, 그런 글이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어두운 지하실에서 촉수 낮은 불을 켜놓고 그것들을 읽게 된다. 이후로 엄마의 대학생활은 늘 그렇게 어두운 지하실에서 곰팡이처럼 피어나며 멍들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형사가 집으로 찾아와 -대체 그 형사는 우리 집을 어떻게 알았을까?- 네 외할아버지를 만나고 간다. 알다시피 엄마를 그토록 믿고 사랑하던 외할아버지는 겁이 나셨나 봐. 엄마에게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하셨지. 나쁜 놈들이 널 꾀어 무슨 짓인가를 하는 걸 참을 수가 없다고. 네가 끌려가거나 네가 다치면 외할아버지는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처음으로 네 외할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것도, 네 외할아버지를 비겁한 시민이라고 비난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네 말대로 그걸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과 그걸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는 치열한 갈라짐이 평범한 엄마의 집 안까지 밀고 들어와 아빠와 딸을 갈라놓았다. 생각해보니, 네가 아빠에게 늘 그렇게 당돌하게 대들었던 것…, 그건 아마 엄마 쪽의 피에 가까운 것일 거야. 아빠가 그걸 보고 네 엄마랑 똑같다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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