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38선 넘어간 미군 넷, 그 뒤 4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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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눈의 감독이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찍었다. 영국 출신의 감독이 평양에 직접 가서 미국 출신의 ‘북한인’을 카메라에 담았다. 물론 북한 당국의 촬영 허가를 받았다. ‘천리마 축구단’(2002), ‘어떤 나라’(2004)의 대니얼 고든 감독이 연출한 ‘평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올해 선댄스·베를린영화제에 소개됐던 화제작이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는 웬만한 극영화 이상의 재미를 준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이 그렇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분단 한국의 또 다른 측면을 들여다본다. 한국인이 그간 보지 못했던 분단의 희비극이 펼쳐진다. 킥킥 웃음이 터지는 대목도 많다.

 무엇보다 소재가 새롭다. 1960년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건너간 미군 병사들을 찾아나섰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얘기다. 하지만 영화에선 ‘정치적 판단’이 부각되진 않는다. 최종 평가는 관객에게 남겨두겠다는 감독의 의중이 읽힌다. 미군이 자진 월북했다는 건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진 얘기는 아니다. 62~65년 조국 미국을 등지고 평양을 선택한 미군은 총 네 명. 카메라는 62년 38선을 넘은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에게 초점을 맞춘다.

 당연, 궁금증이 생긴다. 미국 병사들이 ‘기회의 땅’ 미국을 등지고 ‘빈곤의 땅’ 북한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소위 조국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집안이 변변치 못하고, 부모들은 갈라지고, 학교도 잘 다니지 못하고, 결혼에 실패하고 등등, 삶의 벼랑에 내몰린 병사들은 ‘이 참에, 인생 한번 확 바꿔봐’ 하는 순간의 감정에서 38선을 넘어갔다. 드레스녹도 마찬가지다.

 드레스녹의 삶은 180도 바뀐다. 집이 생기고, 아내를 얻고, 직업을 구하고 등등. 월북 초반에는 여행과 술, 유흥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에 대한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핵심 인물’로 우대받는다. 영화광으로 알려진 김정일에 의해 그들 모두 북한 영화계의 스타로 부상하는 대목이 가장 우스꽝스럽다. 그들은 ‘이름 없는 영웅’이란 시리즈에서 미국인 악당을 연기하며 북한의 혁명예술에 봉사한다.

 드레스녹은 촬영 내내 현재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대동강가에서 낚시를 즐기고, 편안히 쉴 집과 가정이 있고, 좋아하는 술도 홀짝대고, 아프면 주치의를 찾아가고 등등.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 중산층, 아니 중상층을 닮았다. 물론 북한 공산당의 전적인 후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런 그가 북한 체제를 홍보하는 건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일. 그의 고백대로 조선(북한) 사람이 굶어 죽을 때도 하루 800g씩 쌀 배급을 빠뜨리지 않고 받았던 그이지 않은가. 일본인 아내 때문에 결국 북한을 포기한 또 다른 미군 병사 젱킨스와 그가 북한의 실체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장면에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하기 어렵다. 한반도 분단은 오늘도 그렇게 수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23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30일 부산 시네마테크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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