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의 Winning Golf <16> 트러블 샷 땐 가장 확실한 루트를 찾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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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17면

“최형, 보세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몸집이 작습니까, 아니면 몸에 문제가 있습니까. 체육고를 나와 체육대학까지 졸업했는데 운동신경이 남보다 못하겠습니까. 골프만 생각하면 환장하겠어요.”

1년쯤 전의 일이다. 동년배인 K가 하소연을 했다. 그의 구력은 7년. ‘물’이 바짝 오른 K는 처음으로 70대 스코어를 친 다음주에 90대 스코어를 쳤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하수에게 수모를 당했고, 당연히 적지 않은 ‘헌금’을 했다.

K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귀가하는 길에 운전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조금 마음이 아프면서, 마음속으로는 “골프는 원래 그런 거야. 건방기가 조금만 동하면 외면하는 것이 골프야”라는 말이 목젖까지 차 올랐다. 물론 내뱉지는 않았고.

뭐가 문제였을까. 그날 K는 자신감에 넘쳤다. 골프에서 ‘자신감’만큼 중요한 요소도 없지만 도를 넘으면 객기가 된다.

8번 홀까지 3오버파를 기록할 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순조로웠다. 파5의 9번 홀에서 버디라도 기록하면 2오버파. 2주 연속 70대 스코어도 가능했다. 그런데 티 샷이 오른쪽 숲으로 날아갔다. OB는 아니었지만 공은 나무 사이에 떨어졌다. 나무와 나무 사이, 그린 방향으로 ‘터널’이 보였다.

정석은 페어웨이와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레이업하는 것. 하지만 K는 속으로 되뇌었다. ‘버디를 잡아야 하는 홀’이라고. K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졌다. 그러곤 바닥 모를 수렁을 향한 ‘미지의 터널’을 향해 샷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름 1㎝짜리 우박이 양철판에 떨어지듯이 따다닥 하는 소리가 나더니 공이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OB. 다시 원위치에서 네 번째 샷을 했다. 이번엔 페어웨이 가까운 곳으로 공을 쳐냈다. 남은 거리는 230야드 남짓. K는 재빨리 계산했다. 결과는 이랬다.

“5온 1퍼트면 보기, 2퍼트를 해도 더블보기.”

170∼180야드 지점에 워터 해저드가 있었지만 걱정 없었다. 평소 220∼230야드를 거뜬히 날리는 5번 우드를 사용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5온 1퍼트’에 대한 욕심이 지나쳤는지 살짝 뒤땅을 쳤다. 공은 쭉 뻗지 못하고 워터 해저드 앞에 떨어진 뒤 데굴데굴 굴러 물속으로 사라졌다. 결론은 7온 2퍼트, 쿼드러플보기(9타).

10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더하면서 K의 스코어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그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다. K는 후반 9홀 내내 “이 바보, 그때 그냥 나왔어야 했는데”라는 자책을 거듭하며 플레이를 했다고 한다.

최근 필자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숲 속에서 터널을 본 것이다. 운이 좋아 공이 OB 지역으로 나가지는 않았으나 나무를 맞고 더 깊숙한 곳에 처박히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 그 실망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무 아래나 숲 같은 곳에서 트러블 샷을 할 때는 뒤를 돌아보지 말자. 가장 확실한 루트를 찾아야 한다. 거리를 손해보는 쪽이 현명한 선택이다.

<브리즈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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