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경선룰 '여우와 두루미'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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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룰을 둘러싼 민주신당 대선 후보들 간 파열음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선거인단 접수 방식을 놓고 충돌이 거듭되면서 전선(戰線)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얼핏 보면 사소한 것 같은 문제들이 왜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것일까. 당내 전략 기획통으로 불리는 한 의원은 "후보들에겐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겉으론 제각기 일리 있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각 후보 지지 세력의 모양이 달라 경선 룰이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결정적인 동인(動因)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내에선 비노(非노무현) 진영의 손학규.정동영 후보, 친노(親노무현) 진영의 이해찬.유시민 후보의 지지세력 구조가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손.정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앞서 나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지지의 폭이 넓은 편이다. 반면 지지의 충성도는 친노 진영에 비해 떨어진다. 이.유 후보의 상황은 정반대다. 좀처럼 입장을 바꾸지 않을 열성 지지층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수가 적고 젊은 층에 한정돼 있는 편이다. 친노 단체인 '참여정부 평가포럼'이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그 예다.

그래서 두 진영의 관계를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에 비유하는 시각도 있다. 손.정 후보가 넓은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 '여우형'이고, 좁고 목이 긴 호리병이 필요한 '두루미형'이 이.유 후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손.정 후보 측은 선거인단의 숫자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그래서 대리 접수 허용 등 선거인단 모집의 문턱을 최대한 낮추자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나라당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범여권 경선을 붐 업(Boom up)시켜 큰 흥행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려면 선거인단이 200만 명은 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이.유 후보는 선거인단의 숫자가 불어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이 후보는 "설사 선거인단이 수십만 명 수준으로 축소되더라도 대리 접수를 허용하면 안 된다. 그건 한국 정치를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친노 진영은 24일 "하나의 인터넷 회선에서 1만 명이 선거인단에 신청한 사실이 추적됐다"며 "모 캠프 측에서 수십 명의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해 인터넷 대리 접수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한 회선에서 10명 이상 접수시킨 것은 무효로 해야 하고 비위 사실이 확인된다면 고발 등 형사조치도 취해야 한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민주신당 홈페이지를 이용해 선거인단 신청을 한 사람은 24일 50만 명을 넘어선 상태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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