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뺌만 하는 뺑소니 대학생(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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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사람인줄 몰랐다면서 그 먼데까지 뺑소니 치나?』
6일 오전 1시 서울 양천경찰서 교통사고 조사반.
앳된 얼굴의 이모군(22·충남 Y축산전문대1)을 앞에 앉혀놓고 이것 저것 따져묻던 형사는 끝내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다그쳤다.
승용차를 몰다 횡단보도에서 행인을 치여 숨지게 하고 달아났다가 하룻만에 나타난 이군이 『사람인줄 몰랐다』는 등 잡아뗐기 때문이다.
이군이 사고를 낸 것은 4일 오후 9시50분쯤 서울 양천구 목동 양정고앞 횡단보도에서 였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형의 승용차를 몰고 나선 이군은 우산을 받쳐든채 길을 건너던 서울 예원학교 고영관교장(57)을 친후 경기도 고양읍까지 달아났다.
『그래,술도 안마시고 과속도 안했다고 하자. 아무리 그래도 사람인줄 몰랐다는게 말이 되겠어. 학생이면 학생다워야지.』
형사는 유가족이나 되는 것처럼 화를 내다 말고 목소리를 낮췄지만 이군은 여전히 『몰랐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사고를 낸 것이야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재빨리 병원으로 옮기기나 했으면 그분이 살아날 수도 있었잖아.』
방송국에서 열린 챔버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감상하고 귀가하던중 졸지에 사고를 당한 고 교장은 마침 행인도 없어 한동안 길바닥에서 신음하다 뒤늦게 병원에 옮겨졌으나 다음날 오전 2시쯤 숨졌던 것.
이군의 범행은 금방 들통날 수 밖에 없었다.
범퍼에 묻은 핏자국 등을 보고 뺑소니차임을 알아차린 정비공장에서 경찰에 연락했던 것이다.
『명백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반성은 커녕 발뺌이나 해대니….』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보다는 철저히 잡아떼기로 일관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경찰은 계속 씁쓸한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양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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