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시인 유하의 신세대 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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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인류.영상세대.X세대.오렌지족.야타족….신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들은 무수히 많다.그리고 연일 TV.활자매체에 등장하는 그용어들은 의도했건,아니건 간에 하나의 의미로 읽히기 보다는 어떤 煽情性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물론 그러한 선 정성은 「X」나 「오렌지」따위의 단어에서 풍기는 이미지의 선정성일 것이다.
뒤집어 얘기하자면 그것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신세대에 대한 논의가 그러한 이미지의 선정성을 만들어내는,말하자면 기호화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는 반증이기도 하다.사실일부 매스컴을 통해 보여지는,이른바 신세대라 지칭되는 대상은 보편적 인격체라기 보다는 에일리언 또는 오렌지 빛깔의 안개에 휩싸인 다분히 섹시 미스터릭의 존재에 더 가깝다.
그것은 아마도 보수적인 기성세대가 갖는 변화된 감성에 대한 체질적 거부감과 그와 다른 편에 서 있는 상업주의적 부추김의 변용된 표현들이겠지만,어쨌든 신세대라는 것의 실체는 몰이해와 뻥튀김의 2분법적이고 단선적인 사고 속에서 하나의 부재하는 이미지로 전락하거나 왜곡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요컨대 신세대가 곧 오렌지족이라는 등식은 그러한 왜곡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무엇보다도 신세대에 대한 논의의 문제점은 특수한 부류의 삶을 지나치게 일반화시켜버린 데 있다).
필자의 단견으론 오렌지족이란 말은 일부 신세대에 대한 현 사회의 도덕적 질타 그 자체라기보다는 기성세대의 사고의 패러다임을 고수하기 위한 일종의「저지전략」으로 느껴진다.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오렌지족은 미국의 디즈니 랜드 같은 것이다. 그에 따르면 디즈니랜드는 「실제의」나라,「실제의」미국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곳에 존재한다.디즈니랜드는 미국을 리얼한 세계로 믿게하기 위해 상상의 세계로 제시된다.그러니까 디즈니랜드라는 공간은 미국이 갖고 있는 온갖 만화처럼 허황된 이미지를 代贖하고 있는 일종의 희생양인 셈이다. 그렇다면 오렌지족은.그것은 「건강한」우리사회가 사실은 오렌지 빛깔의 불길한 욕망에 오염되었음을 감추기 위해 거기에 존재한다.말하자면 현 사회 모든 형태의 오염되고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오렌지족으로 기호화된 대상에게 떠넘김으로써 기성 세대는 자신들의 가치관에 대한 상대적인 건강함을 획득한다.그리고 설령 그것이 도덕적 개탄이라 할지라도 진정으로 도덕적이지 않다.왜냐하면 자기반성이 없는 개탄이기 때문이다.
모든 왜곡이나 편견은 자신의 패러다임밖에 있는 것들을 이해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을 때 시작된다.사실 신세대들은 새로이 출현한 인류가 아니라 바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문화의 틀속에서 성장한 이들이다.신세대의 정서로 대표되는 랩 음악은 서양판 각설이 타령으로 볼 수 있으며,최근의 신세대들에게 폭발적인인기를 모았던 『마지막 승부』같은 드라마 또한 기존 무협지의 또다른 변용일 뿐이다.
변화된 것이 있다면「생활의 조건」일 것이다.특히 매스미디어의확산과 전 사회의 컴퓨터화는 문화적 사고의 틀을 뒤바꿔놓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예컨대 전통적 의미의 가족 공동체적 언어는 PC통신 같은 극히 개인적이고 분 산된 이질적 언어 게임으로 바뀌었으며,예고편과 재방송이 뒤죽박죽 비쳐지는 수평적 시간 개념이 해체된 비디오 문화속에서 미래에 대한 꿈 또한 기성세대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미 단말기의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경험된 미 래이기에.
따라서『백 투 더 퓨처』라는 영화처럼 신세대에게 미래는 「앞으로 나아갈」세계가 아니라「돌아가는」세계다.그들의 유행어 『아무 생각없이 산다』는 말은 그런 맥락에서「낡아버린 미래」에 대한 하나의 푸념으로 읽혀진다.미래가 더이상 가슴 설레는 미지의세계가 아니므로 그들은「꿈꾸기」보다는 현실의「지금 이순간」에 더욱 매료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꿈의 부재는 곧 독창적 삶의 부재를 의미한다.
신세대가 즐겨 듣는 음악은 대개 문학의 패스티시에 해당하는「샘플링」음악이며,그들의 패션은 일견 개성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홍콩영화나 미국영화,그리고 일본 뮤직비디오등에서 보여지는 패션의 베끼기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 신세대 문화의 한계는 그들이 비트 세대로서의 거부하는 몸짓을 보여준다기보다는「즐거운 아류」가 되어버렸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그러한 아류적 상황에 대한 반성은 전적으로 신세대들만의 몫은 아니다.앞서 말한바 있지만 신세대의 혼돈된 가치관을 만들어낸 것은 결국 기성세대의 문화적 터전인 것이다.
자기 반성이 결여된 개탄은 신세대에 대한 상업주의적 부추김과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한 혼돈된 상황 자체를『요즘 애들은…』하는 식의 신세대의도덕적 타락 문제로만 치부해버릴때 신세대는 기성세대의 희망찬 내일이 아니라 한갓 디즈니랜드 같은 우리사회의 타락한 욕망에 대한「대속의 존재」로 머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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