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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월드 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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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화성인들이 지구를 침공했습니다! 우주선에서 지상으로 총을 막 쏴댑니다!”

1938년 10월 30일 오후 늦게 CBS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격앙된 목소리는 미국 동부 뉴저지주 일대를 순식간에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미디어 역사에 획을 그은 ‘우주 전쟁’ 소동이다. 천재 영화감독 오선 웰스가 드라마를 실제 상황처럼 연출하는 바람에 청취자들이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뉴스 진행 형식을 빌려 공포에 질린 시민의 코멘트까지 삽입한 기발한 발상은 이후 연출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에콰도르의 한 라디오 방송이 수년 뒤 이를 더 생생하게 재연했다가 폭동을 초래할 정도로 주민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특종 보도 못지않게 오보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분출된 민심 이반은 당시 ‘리벨레’ 같은 유비통신의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보도 탓이 컸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추기경의 씨를 가졌다’같은 작문 기사가 판쳐 가뜩이나 인기 없는 왕정의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렸다. 귀족들이 사병을 모아 농촌을 약탈하기 시작했다는 ‘카더라’ 소문이 번지자 농민들이 반란 대열로 속속 뛰어들었다. 이른바 ‘대공포’ 현상이었다(미첼 스티븐스,『뉴스의 역사』).

오보도 재미있게 만들면 수익 상품이 된다. 미국의 대표적 황색지인 위클리 월드 뉴스(WWN)의 표지엔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만한 신문’이라는 구호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실제로는 정반대의 역설이다. 해괴한 음모론과 동화적 상상력으로 작문한 ‘고의적 오보’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살아 있다’와 ‘외계인’ 기사는 1979년 창간 이래 간판 시리즈다. WWN의 그간 보도에 따르면 엘비스 프레슬리와 메릴린 먼로, 케네디, 히틀러는 생존해 있다. 힐러리가 외계인과 바람을 피웠다든가 하는 ‘특종’ 보도에 대해 다행히 당사자의 명예훼손 제소는 없었다. ‘재미만 있으면 취재 경위를 제발 묻지 말아 달라’는 게 편집장의 주문.

30년 가까이 미국 내 대표적 ‘수퍼마켓 타블로이드’로 자리 잡은 WWN이 경영난으로 이번 주말 폐간된다. 워싱턴포스트 같은 정론지도 장문의 특집 기사에서 ‘미 역사상 가장 독창적 신문이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하긴 ‘우주 전쟁’식 뉴스가 판치는 시대를 맞아 WWN 같은 주간지가 설 땅이 좁아지긴 했다. ‘제도권 매체’에도 소설 같은 현실이 등장하고, 진위마저 불확실한 짜릿한(?) 기사가 넘쳐나고 있으니.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