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홀한 심의로 묻힌 알 권리/최훈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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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야 정치관계법 6인 협상대표들이 선거기간중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를 결정한 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특위위원장인 신상식의원(민자)과 강수림의원(민주)은 『여야 의원 6명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냥 통과됐다. 결정하는데 몇분도 안 걸렸다』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입장이다.
나머지 의원들도 「금지이유」에 대해 『부동표가 영향을 받는다』는 도식적 답변을 반복하는 것 이외에는 무언가 심사숙고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통합선거법상의 1인당 선거비용 상한액이나 합동연설회 존치여부 등 자신들의 선거와 직접 관련있는 구체적 조항에 대해서는 각기 수차례의 당내 공청회를 거쳤다.
이같이 자신들과 직접 결부된 문제에는 머리를 싸매며 시간을 끌었던 여야 대표들이 유권자,나아가 국민의 알 권리를 규정한 헌법(21,23조) 조항의 제약 여지가 다분한 법규를 만들면서 그것도 단 몇분에 신속히 끝내버린 사실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나마 「공표금지」로 내세우는 논리는 더욱 한심하다.
『부시가 클린턴에 패한 것도 여론조사때문』 『우리나라는 아직 부화뇌동의 위험이 있다』(황윤기·신상식의원)는 등의 이유와 함께 유권자들이 대개 「될 사람 찍어주자」는 식으로 조사결과에 휩쓸린다는 것이다.
하나같이 유권자와 국민을 부화뇌동하는 「중우」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정책이나 노선을 거의 고려도 하지 않고,위컴 전 유엔군 사령관이 한국인을 혹평했던 「들쥐론」처럼 지도자를 졸졸 따라 다녀온 다수 정치인들의 한심한 행태를 국민들도 도습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국민을 무시하는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유권자들은 후보가 어느 계층,어느 집단에 지지를 받고 있으며 왜 지지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근거를 여론조사 결과로 파악해 자신의 의견과 대조하는 합리적 판단을 할 자료가 필요하다.
어떤 이유로든 정부의 자유로운 흐름을 법규로 제약하는 것은 최근의 시대정신에 어긋나며 이는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오류임을 여야는 깨달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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