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의 쾌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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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떤 스포츠에서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정신적 자세가 경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록경기에서는 선수가 갖는 심리적 안정감만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누구든 최소한 평소의 기록을 유지하거나 잘하면 그 이상의 기록을 낼 수 있다는게 정설처럼 되어 있다. 어떤 스포츠 심리학자는 선수의 정신력이나 심리적 자세가 기록경기에서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데 미치는 영향을 80% 이상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선수들의 뒤를 돌보는 임원들의 첫번째 임무가 선수들로 하여금 정신적 안정을 갖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번 노르웨이의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에서는 선수단은 물론 국민들까지도 처음부터 선수들에게 너무 부담감을 주지 않았느냐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92년 프랑스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에서 거뒀던 종합성적 10위를 이번에도 유지해야 한다는 한결같은 여망이 무거운 압박감으로 작용한 탓이다.
게다가 경기초반에 한국 빙상의 간판인 몇몇 선수들이 평소 기록도 유지하지 못한채 하위로 처지면서 알베르빌에서의 성적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자 선수단의 위축된 모습은 눈에 보이는듯 했다.
특히 『열악한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없이 목표만 너무 높게 잡았다』는 국내 언론들의 질책이 한국선수단의 마지막 보루인 쇼트트랙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은 커녕 오히려 괴로움만 가중시켰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간 23일 새벽 쇼트트랙 경기에서 거둔 두개의 금메달은 더욱 값져 보인다. 선수단과 국민 모두의 한결같은 메달 열망에 초조하거나 위축될 법도 한데 막상 본인들은 평소의 기량만 보여주겠다는 자세로 태연하게 경기에 임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어린 소녀들이 여자 3천m계주에 이룩한 쾌거는 온국민들을 감격시키기에 충분했다. 시상대에 오른 그들의 모습은 지극히 천진난만했지만 그 어리디 어린 미소의 뒤켠에 은밀하게 숨겨진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가 절절한 느낌으로 모두의 가슴에 와닿았던 것이다.
그들의 쾌거는 정신력이 중시되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하나의 귀감으로도 남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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