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단지 "중개업소도 안 팔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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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재건축 단지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속병을 앓고 있다. 조합 설립인가를 받은 곳에서 특히 그렇다. 지난해 12월 31일 이후 새로 조합 설립인가를 받은 단지의 경우 명의 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지난해 12월 30일 이전에 설립인가를 받는 경우 한번에 한해 전매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래가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거래 부진을 견디다 못해 중개업소를 내놓으려 해도 팔리지 않고, 권리금을 챙기기도 어렵게 됐다.

조합 설립인가를 모두 받은 서울 송파구 잠실 1~4단지의 단지 내 중개업소는 2백여곳이나 된다. 대부분 재건축 아파트 거래를 통해 '먹고 사는'중개업소들이다. 그런데 지난해 10.29 대책 이후 거래가 막힌 판에 지난해 12월 31일 재건축 조합원 명의 변경을 제한하는 조치가 나오자 매수 발걸음이 완전히 끊겼다.

L공인 관계자는 "한달 동안 한건도 거래하지 못했다"며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지만 권리금을 챙기지 못할 것 같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권리금이 떨어질까봐 드러내놓고 중개업소를 매물로 내놓지도 못한다.

서울 송파구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송파구 중개업소들의 폐업신고 건수가 38건이었으나 12월에는 71건으로 늘어났다. 폐업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거래 감소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잠실 1단지 P공인중개사무소 L사장은 "그래도 이곳은 실수요자가 가끔 찾지만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중개업소들은 더 심각하다"고 전했다.

실제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내 중개업소들은 서서히 이동 준비를 하고 있다. 개포동 S공인 측은 "조합 설립인가가 난 1단지에서 거래를 기대하긴 힘들다"며 "인근 2~4단지나 대치동으로 뜨려고 해도 권리금에 발목이 잡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개포 2~4단지는 조합원들의 거래를 돕기 위해 조합 설립인가 신청을 늦추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과천 주공 등 재건축 아파트가 많은 지역의 중개업소들도 같은 곤란을 겪고 있다. 잠실 5단지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재건축 아파트만 거래해도 먹고 살던 좋은 시절은 다 갔다"며 "재건축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지어 완공할 때까지 살아 남을 중개업소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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