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보도후나 아는 「북핵」/진창욱 워싱턴특파원(특파원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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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정부 지나친 비밀주의… 국민 알권리 무시
북한 핵문제는 지난 한햇동안 우리나라의 최대관심사중 하나로 다뤄져왔다. 신문마다 관련기사를 웬만하면 1면 머리기사로 취급하기 보통이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북한 핵문제를 취재하는 특파원들은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가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보다는 자괴감을 느낄 때가 더 많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주요내용은 거의 미국언론들이 보도한뒤에야 「우리 문제」로 다뤄지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둘러싼 북한­미국과 한국­미국간에 이뤄지고 있는 협상내용중 95%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승수 주미 대사가 지난 20일 서울에서 워싱턴 방문한 국내 주요인사들을 위한 대사관저 만찬에서 한 말이다. 한 대사 말에 따르면 한국언론의 보도는 겨우 진실의 5%만을 갖고 춤을 춘 셈이다.
5% 공개방침의 백미는 지난주 한승주 외무부장관의 백악관 예방과 관련한 정부보도자료다. 한 장관을 수행한 김삼훈 외무부 핵담당대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한 장관의 빌 클린턴 대통령 면담내용 보도자료는 딱 4문장에 불과했다.
클린턴 대통령과 한 장관의 대담은 20여분 계속됐었다. 그러나 보도자료가 밝힌 내용은 1분이면 얘기가 끝날 수 있는 아주 짧은 것이었다. 20대 1이라는 시간비율은 우리 정부의 「95%는 공개하지 않고 5%만 밝힌다」는 원칙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너무 다르다.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후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북한 핵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바 있고 앤서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도 수차례에 걸쳐 미국정책을 공개했다.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매주 한번이상 북한 핵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레스 애스핀과 윌리엄 페리 전·현직 국방장관도 그동안 수시로 기자들에게 국방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들처럼 장관급 이상의 인물이 아니더라도 백악관·국무부·국방부 대변인들은 거의 매일 북한 핵협상 내용에 관해 브리핑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행정부서의 모든 관련 공무원들이 북한 핵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들의 발언으로 모두가 미국정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것들이다.
북한 핵문제가 미국에 비해 한국에게 더 절실한 문제일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정부 관리들은 북한 핵문제의 현황을 「열심히」 국민에게 알리고 있는 반면 한국정부는 5%만 국민에게 알리고 있다.
북한 핵문제 협상이 너무나 미묘하고 중대한 것이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의 한사람인 필자는 내 운명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북한 핵문제」의 내용중 아주 비밀로 지켜져야 하는 5%를 제외하고 나머지 95%를 속속들이 알고 싶다.
내가 납부하는 세금으로 적어도 이 만큼의 요구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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