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엑소더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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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18면

미국의 전격적인 재할인율 인하로 주말 글로벌 주식시장이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이번 주 초 국내 증시도 큰 폭의 반등이 예상된다. 지난 주말 공포심을 극복하고 주식을 사들였던 투자자들은 월요일 아침의 시장이 기다려질 법하다. 주식을 판 사람들은 땅을 칠 법하지만, 그게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들이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지난주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를 벼랑으로 떠밀었다.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진원지인 미국 증시가 3% 떨어지는 동안 한국 증시는 10% 넘게 곤두박질했다. 외국인의 투매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외국인들은 뭔가에 쫓기는 듯했다. 가격을 불문하고 팔리는 주식은 무조건 던지고 보는 모습이었다. 주 후반엔 하루 1조원어치씩 순매도했다. ‘오죽 다급했으면 저럴까’ 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속사정은 간단하다. 미국의 서브프라임에 투자해 큰 손실을 보게 된 헤지펀드 등 외국인들이 일단 돈 되는 자산은 뭐든 처분해 현금을 마련하기에 혈안이 됐던 것이다. 한국 주식은 그동안 많이 오른 데다 시장 저변이 넓어 잘 팔린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자산으로 꼽혔다.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을 ‘빅 바겐세일’ 목록에 올렸던 셈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자초한 일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너무 많은 주식을 외국인들에게 넘겨주었다. 정부는 외자 유치를 구실로 시장의 빗장을 완전히 풀었다. 외국인 자금이 들어올라 치면 경제위기가 해소되고 증시가 선진화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금산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국내 자본은 손발을 묶었다.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가 제집 안방인 듯 호령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제 제 발로 걸어나가고 있다. 그들도 한국 증시의 장래가 밝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당장 한 푼이 아쉬우니 헐값에라도 팔고 떠날 수밖에.

당장 주가가 떨어지니 국내 투자자들은 고통스러움을 호소한다. 외국인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고마운 일일 수도 있다. 언젠가 되사들여야 할 주식이라면 그들이 다급해 싸게 팔고 있는 게 다행일 수 있다. 주가지수 2000, 3000 시대에 큰소리치며 높은 값에 주식을 팔고 떠나는 상황과 비교하면 말이다. 더구나 지금 떠나는 외국인은 단기 투기 성향의 헤지펀드가 대부분이다. 장기 가치투자에 치중하는 외국인들은 거의 동요하지 않고 있다.

미국 FRB가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지만, 외국인들이 당장 한국 주식의 매도를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하가 서브프라임 사태의 근본 처방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매물은 국내 투자자들이 충분히 감내할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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