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주부통신>6.미국 자원봉사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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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뉴욕주 테판타운에 사는 퇴직교사 테피니 훌러드 할머니는 올해72세다.그는 매일 오전11시면 어김없이 집근처의 국민학교로 바쁜 걸음을 옮긴다.점심시간을 맞은 어린이들에게 우유를 따라주는등의 일을 퇴직후 10년째 계속하고 있다.또 매주 한차례 정신병원에 가 환자와 이야기도 나누고 편지를 써주는등 자잘한 심부름도 해준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일뿐 아니라 나에게도 보람있는 일』이라는 훌러드 할머니는 또『음악교사로 일하다 퇴직한 내 친구는 수시로 양로원을 찾아가 바이얼린을 연주해 외로운노인들을 즐겁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밖에도 내가 살고있는 동네의 이웃사람들만해도 많은 사람들이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휴일 소방서에서 소방대원으로 봉사하는 중년남성,병원에서 여러가지 잡일을 돕는 고등학생,청소년들에게 각종 놀이를 가르치는 대학생,매일아침 출근길에 양로원에 들러 노인들의 아침시중을 돕는 유치원 교사,시각장애자를 위해 책내용을 녹음해주는 주부….
「자원 봉사 활동의 생활화」라고나 할까.『너무 바빠서…』라는핑계(?)로 자원봉사활동을 외면하는 사람은 아주 드문것 같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92년 현재 1억명의 미국인이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88년에 비해 17.5% 증가한 숫자다.미국의 비영리 자원 봉사 단체는 약 50만개다.누구든 자신의 능력과 시간에 따라 각양각색의 자원 봉사 활동을 하도록 뒷받침한다.
60세 이상의 퇴직자들이 각각의 재능과 경험을 살려 지역사회곳곳에서 일하도록 돕는 단체,중고교생및 대학생들이 지역사회 청소년들을 위해 무엇인가 할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단체…,또 졸업하려면 1년에 12시간이상 자원 봉사 활동을 하 도록 못박아 놓은 학교도 있고 일부 州에서는 고등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지역사회에 대해 봉사활동을 하도록 하는 제도를 추진중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하는「가족 자원 봉사」도 점점 활기를띠고 있다.가까운 스프링벨리타운의 경우 모녀가 양로원에 가서 노인들의 잠자리를 보살피거나,아버지가 자녀3명과 함께 저소득층청소년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경우, 네살짜리 꼬마가엄마와 함께 바깥나들이가 힘든 노인집을 방문해 음식나르기 시중을 들면서 일찍부터 봉사를 익히는 모습등을 쉽게 목격할수 있다. 뉴저지 해변가에 사는 한 주부는 자녀들과 함께 매주말 해변가 쓰레기를 주우며 생활속에서「환경 보호운동 조기교육」을 한다.이러한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가족만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불우한 이웃에게도 눈을 돌릴줄 아는 인간애를 가르칠수 있을뿐 아니라,가족간의 대화도 풍부해지고서로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 가족단위의 자원 봉사 활동을 펴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집없는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한 기금을 이미 30만 달러나 모은 뉴욕시내의 테디 그로스씨도 바로 그런 경우다.그는 4년전 딸과 함께 길을 가다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걸인이 불쌍하다며 집으로 데려가자고 조르던 네살짜리 딸 때문에「동전 모금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저 사람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간다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회피해버리는 것은 결코 딸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로스씨는 이웃과 함께 쓸모없이 서랍이나 지갑속에서 굴러다니는 동전 페니를 모으는 운동을 시작 했고 그동안상당한 효과를 거두게 됐다는 것이다.
말을 앞세우기보다 행동으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미국 부모들의 이같은 노력이야말로 이 사회의 커다란 힘이아닌가 싶다.홍수.화제.명절등 갑작스런 재해나 특별한 기간에만이웃돕기 운동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나눔」을 실천하는 자원봉사 활동은 우리가 크게 우려하는「가족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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