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장출신 향군회장(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징집영장을 받아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면 가장 엄격한 계급사회의 단면이 실감있게 펼쳐진다. 입소전의 학력이나 경력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조차 철저하게 무시된다. 여러살 아래의 동생뻘이라도 상급자라면 무조건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단 하루라도 먼저 입소했으면 상급자 행세를 하려든다.
계급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특수사회니 만큼 누구나 군대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하루빨리 더 높은 계급에 오르고 싶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평생을 군에 몸담기로 작성한 직업군인과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군문에 들어간 젊은이들의 계급에 대한 바람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직업군인들의 최종적인 목표가 별자리에 올라 장군의 호칭을 얻는데 있다면 사병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병·일병·상병을 거쳐 병장에 오른 다음 군복을 벗는데 있다. 그래서 훈련병들은 이병이 하늘처럼 보이고 이병이 되면 눈이 빠지게 일병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군대사회의 계급에 대한 엄격함은 군을 떠나 사회생활을 하는 중에도 적지 않게 작용한다. 장군이었던 사람들은 옷을 벗어도 여전히 「장군」으로 예우되며 군복무 시절의 상하관계는 사회생활에서도 여전히 무시되지 못한다. 이따금 군대에서의 상하관계가 사회생활에서 뒤바뀌게 되면 서로 불편하고 어색해 일하는데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이같은 철저한 계급관념도 30여년에 걸친 군사정권 치하의 부산물이 아닌가 싶다. 5·16이나 12·12 등 군부에 의한 엄청난 정변이 일어난 후에는 상식적인 승진규정이 무시된채 영관급 장교가 느닷없이 별을 다는가 하면 별 몇개쯤 더 다는 것이 예사일 정도의 논공행상이 이루어지고,그 마지막 계급이 군복을 벗은 후에도 사회에서의 「자리」를 차지하는 기준의 역할을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재직시의 계급이 군을 떠난후에도 기득권처럼 작용하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라 할 수 없다. 서울시 재향군인회의 첫 회장경선에서 병역출신의 후보자 장성출신의 후보자를 누르고 당선됐다는 소식은 전국에 병장출신의 향군이 수백만명에 이를 것임을 감안하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만 군사정권 시절이었다면 어림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