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 고위직 오르려면 한국국적 되찾아라-유엔근무 교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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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제기구에서 고위직에 오르려면 한국 국적을 가져라」-.
지금 한국 외무부는 색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른 나라 국적을 보유한채 국제기구에서 활동해온 한국계 人士들이 한국국적을 되찾으려는 희망을 전달해오고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례는 파리의 한국 외교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엔산하 단체중 가장 큰 기구인 유네스코 본부의 과장(P5)으로 있는 유모씨(57)가 그 주인공.캐나다 국적을 갖고 있는그는 지난해 한국 정부에 귀화의사를 밝혔다.
70년대 캐나다 국적을 취득해 계장직급(P3)으로 유네스코에들어간 그는 그동안 업무능력을 상당히 인정받아 국장급 승진을 눈앞에 두게 됐으나 캐나다 국적으론 승진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유씨가 선진국이긴 해도 국가차원에서 지원도 미약하고 국제사회에서 입김도 약한 캐나다 국적 대신 開途國들의 지원, 유네스코 재정분담 기여도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국적을 보유했더라면 재작년에 충분히 국장승진이 가능했었다고 유네스코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하지만 간단히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데 한국외무부의 고민이 있다. 선뜻 귀화신청을 받아들여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자니 불과몇년 후면 그가 정년이 되는 점등이 걸리고,그의 요구를 외면하자니 그만한 언어능력과 국제감각을 겸비한 한국인도 흔치 않은 실정이기 때문이다.개인으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겠 지만 유씨의 국적변경史는 지난 연말 中央日報 교육개혁특별취재반이 선진각국을 돌며 확인할 수 있었던 달라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말해주는 한 사례다.
지난 30여년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비중이 커지면서 한국에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국제기구의 주요 보직도 더 이상 쳐다보기만 하는「남의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난 세월 국제사회에서 일할 전문인력을 키우는데 소홀히해온 우리 사회에는 정작 내보낼 인재가 없다.
결국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한국인이 맡을수 있는 자리를 다른 나라에 넘겨주는 꼴이 됐다.
한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강력한 국력이 뒷받침되는 경우고 둘째는 국제기구에적극적으로 참여해 발언권을 행사하는 방법이다.이 경우엔 전문적인 지식과 아울러 어학능력이 필수적 요소다.
英연방의 하나인 호주는 영어라는 무기를 십분 활용해 일찍부터국제기구에 적극 진출,주요 포스트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 그들은 현재 선진국들의 엇갈린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노하우를 축적,국제사회에서 국력보다 훨씬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아시아의 후진국들을 보면 우리의 취약점이 더 아프게느껴진다.
『후진국에선 장관을 지냈거나 국립대학 총장을 역임한 人士들이겨우 과장직급으로 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국력에 따라 배정되는직급이 다르기 때문이지요.그나마 그 자리를 얻기 위해 각국이 물밑에서 벌이는 로비는 정말 대단합니다.』 유네스코에 파견돼 있는 교육부 張基元과장(38)이 들려준 각국 국제화 전략의 한단면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국제화」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국제기구에서 세계 각국의 새로운 동향을 읽고 한국의 입장을 배려할 고급인력 품귀현상이야말로 국제화의 걸림돌이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이 아프리카 이집트출신인 것을 보면 한국인이 유엔의 중심에 진입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한정된 자원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끌어내야 하는 경제원칙은「국제화전략」에서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를 위해선 국제기구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그들을 선도할 수 있는 전문인력 육성이 시급하다는 생각은 우리가 선진국 교육취재를 통해 부수적으로 얻은 큰 수확이었다.
〈李相列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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