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산다>10.광릉 정착 노장철학자 노태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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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소크라테스의 집」은 광릉 竹葉山을 바라보는 맞은편 山중턱에바람에 쓰러질듯 서 있었다.老莊철학자로 알려진 盧台俊씨(75.
경기도포천군소흘면직동2리)가 살고 있는 초막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은『기원전 그리스의 哲人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집이 왠지 그랬을 것 같다』고 했다.
광릉 수목원을 조금 못가 왼쪽길로 구부러져 들어가면 직동마을.다시 촌가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산길을 따라 배밭과 얼어붙은 조그만 호수를 돌아서자 나타난 그의 집은 거적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무심하게 자란 마른 풀숲속에 버려진 헛간처럼 서 있는 陋屋은 그와 그의 친구들이 반 장난삼아 재작년에 지은 집.가마때기와 대나무가지.흙.비닐등을 되는대로 엮어 간신히 비바람을 피하게 만든 오두막은 그가 「無爲의 삶」을 실천하는 곳 .
가마니를 펴서 깐,말할 때마다 허옇게 입김이 서리는 손바닥만한 그의 방은 「넝마」같은 물건으로 채워져있었다.
신발을 벗어놓는 방안 한구석엔 진흙 아궁이에 큰 검정 가마솥이 걸려있었고 대나무로 엮은 천장에는 열매와 들풀이 시들어가고있었다.그러나 그런 초막 한쪽 창으로는 넉넉하고 늠름한 광릉 수목원의 죽엽산이 한눈에 들어와 그의 집에 생명 을 불어넣고 있었다. 불청객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정좌한채 그 창을 먼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없이,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이 자급자족하며 자연 그대로 사는게지.』삶의 목표가 그러한 盧씨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6년전.
70년대 후반부터 경기도 楊州山城에서도「道人」같은 삶을 살았던 그는 88년 숲이 더 깊어보이는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이마을 申씨네가 한때 닭장으로 쓰던 헛간을 거저 빌려 치운후 철제 침대를 놓아 겨울을 네번이나 지낸 그는 재작 년「새집」을 지어 그보다 높은 산 위로 옮겨 앉은 것.
그는 숲의 氣를 온몸으로 받기 위해 벌거벗기를 서슴지않는「거지할아버지」쯤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비쳐졌지만 일찍이 문교부 대학교육과 장학사.단국대 교수등을 지낸 인텔리에다 물려받은 재산도 적지않은 사람임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명문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혜화전문을 나온후 당시 北京대학 연구원에서 유학했을 정도로 유복하게 살았다.집안 배경이그의 승승장구 출세로 이어졌고,30대의 젊은 나이에 그는 당시대학 인가를 좌지우지하는 일을 하게 됐다고 전했 다.대학으로 옮겨앉은 그는 50세쯤 되자 대학을 그만두고 낭인생활 끝에 70년대 초반 양주산성에 스며들었다.
『중국어회화 입문』『중국詩文』등의 저서를 갖고 있는 그에게 한 출판업자가 찾아와『道德經』『老子』등의 譯解書를 내자고 제의하면서부터 아예 老莊사상에 깊숙이 심취해버렸다.
그는 은거하면서 이곳에서 역해서로 『菜根譚』『牧民心書』『周易』등도 펴냈다.그가 개천물을 떠다 밥을 지을 정도로 산수가 맑은 이곳으로 이사온 요즘 하는 일은 뒷산과 앞산으로 갖가지 약초와 야생초를 캐러다니는 일.
그는 산속에서 캐온 것들을 초막 앞에 나란히 심어 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감상하고 햇볕이 좋은 때는 요즘도 하루종일 맨몸으로 손과 발을 하늘로 향한채 자연의 氣를 받아들이곤 한다.
그는 자신이 기거하는 산속에서 칡뿌리를 캐 칡술을,黃菊꽃을 따 말려 차와 술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소나무 꽃인 松花를 따넣어 달인 두충차도 그의 기호품.
마음이 내킬 때는 앞뜰에 고구마나 옥수수를 심고 햇볕속에 주저앉아 김매기를 즐기기도 한다.자연에서 氣를 듬뿍 받아서일까,아직 몸태가 젊은이같은 그는 충치 하나 없고 돋보기를 안쓰고도신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
그가 만들어 쓰는 쑥베개 옆에는 피터 드러커의 『새로운 현실』이 놓여있었다.
『사람의 幸.不幸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내가 지금 앉은 자리가 가장 편하다고 할 밖에….』잠도 밥도 마음이 가는대로 따른다는,그의 벽에 남루하게 붙어있는 액자「樂在其中」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결혼생활 50년동안 그런 그를 묵묵히 지켜봐왔던 아내 박영순씨(70.2남1녀는 출가)는 남편의 나이가 마음에 걸렸음인지 지난해 봄 서울압구정동 아파트에서 이사와 그와 4㎞정도 떨어진곳에 살며 수시로 오두막을 오가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자연에서 살고 싶으면서도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함에 대해『사람들이 빈몸으로 살수 없다하나 이는 物慾때문.자신이 배설한 인분만으로도 충분히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채소는 길러낼 수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高惠蓮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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