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가지 질문에 딱부러진 답변/김진국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답변은 20분만에 끝났다. 의원들이 질문한 시간은 3시간여. 무려 70여가지나 되는 질문을 단 한가지 답변으로 마무리했다.
장관들의 국회답변은 지루한 일반론이 대부분이다. 의원들이 묻는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장관도 있다. 부하직원들이 써놓은 답변서를 소화도 않고 읽어내려가는 것이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의욕을 가진 의원들이 일문일답을 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핵심은 피하고,모든 일을 다할듯이 말하지만 실천은 없다.
이병태 신임 국방장관은 참모들이 만들어놓은 답변서를 아예 옆으로 제쳐놓았다. 그의 답변은 한가지. 『조사결과를 지켜봐 달라』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의원들은 일문일답을 한 것 이상으로 시원해했다. 의원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간단하게 심경을 밝혔다. 그는 22일 취임한 날 저녁부터 사건파악에 나섰다. 연말정국의 최대 현안인데다 국회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이 장관은 관련 간부들을 불러모아 의원들이 물은 것과 꼭같은 질문을 쏟아놨다. 그러나 『답변을 들어봐도 가슴에 와닿지 않고 의문만 남았다』고 그는 토로했다.
『내 느낌은 「매우 한탄스럽다」 「30여년 군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는 두가지 뿐입니다. 장년국군이 이 정도밖에 안되느냐 하는 아픔을 느낍니다.』
그는 야당의원 이상으로 현재의 국방부에 대해 호되게 비판했다.
『신정부가 출범한 후 안보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잔존부조리가 그대로 있습니다. 군의 진정한 개혁은 비능률·부조리·무능·사욕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정부 입장에서 감출 것이 아닙니다. 당당하게,철저하게 조사하겠습니다. 이렇게 나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는 답변서를 참모들이 써주는대로 읽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실천도 하지 못할 말을 늘어놓지는 않겠습니다. 조사결과를 지켜봐 주십시오.』
답변은 당돌(?)했지만 야당의원들은 오히려 장관의 진실을 받아들였다. 『진상을 철저히 밝히겠다는 이 장관의 대단한 결의를 믿고 싶다』(임복진·나병선의원)고 말했다. 물론 이 장관이 취임한지 사흘만이라는 점도 감안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실한 답변이 반드시 시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님이 이날 국방위 회의로 입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