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합격해도 22%는 '백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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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합격만으로도 높은 사회적 지위가 보장됐던 시대는 점차 옛일이 돼 가고 있다. 경기 위축과 법조인 급증으로 사법연수원 수료생들의 취업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말 4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사법연수원생 33기 수료식이 16일 오후 경기도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열렸다. 이들은 사법시험 사상 첫 1천명 선발 세대다.

이날 연수원을 졸업한 9백66명 가운데 2백13명(22%)은 판.검사 임용은 물론 일반 직장 취업 등 최소한의 진로조차 결정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수료생 7백98명 가운데 1백69명(21.2%)이 진로 미결정 상태에서 수료식을 치렀던 것과 비교하면 미취업 비율도 상승한 것이다. 이 같은 취업난은 5백명 이상씩 수료생들을 배출한 2000년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수료생들의 판사.검사 임용 비율도 크게 떨어졌다. 1998년 전체 수료생 중 39%가 판사.검사로 임용됐지만 이번에는 20%로 줄었다.

특히 이번에 법무법인 취업이 확정된 1백24명과 기존 변호사 사무실에 취업한 77명 외에 단독 개업하는 1백43명도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92년 2천4백50명이었던 국내 개업 변호사 수가 2002년 초 5천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날 수료식에 참석한 朴모(37)씨는 "동기생들에 비해 나이가 많기 때문인지 기업체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며 "계속 취업이 안되면 단독으로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하겠지만 그나마 전망은 어둡다"고 말했다.

한편 사법연수원 수료생들이 취업난 속에 종교단체 등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올해 수료생 가운데 시민.종교 단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게 된 수료생이 모두 12명이나 된다.

연수원에서 불교모임 대표로 활동했던 김형남(40)씨 등 2명은 조계종 총무원에 채용돼 앞으로 종단 관련 각종 법률상담을 할 예정이다. 金씨는 "이젠 법조인들이 단순한 송무(訟務)에서 벗어나 정책 분야에서 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나눔.기부 운동을 벌이는 '아름다운 재단'은 최근 변호사 4명을 채용했다. 지난해 각각 1명씩 뽑았던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도 올해엔 3명으로 채용인원을 늘렸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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