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언론이 만들었던 「청백리」/이철희 사회2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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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때 청백리로 소문나 「한국의 잠롱(전 태국 방콕시장)」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오성수 전 성남시장이 엉뚱하게 근무태도 불량(실제 이유는 재산문제)으로 직위해제된 사건은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당시의 백진두선장 생존여부를 둘러싼 언론매체들의 오보사건(당시 중앙일보는 백 선장의 생존설 묵살)을 또한번 떠올리게 하는 것이어서 입맛이 씁쓸하다.
중앙일보도 오 전 시장의 「영웅」 만들기에 한몫(중앙일보 90년 8월12일자 2면 「도민편에 선 장한 청백리」)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한때 「청백리」였던 그에게 이같은 멍에가 씌워져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노태우정권 때인 90년 8월 고위공직자와 사회 주요 저명인사의 비리를 내사하던 서슬퍼런 청와대 특명사정반이 오 시장에 대한 투서사건과 관련,성남시로 현장조사를 나갔다가 「벌」 대신 표창을 상신하면서부터 비롯됐다. 당시 공직사회는 부조리와 무사안일·눈치보기·이권개입 등이 한창 만연했던 상황이어서 「오 시장과 같은 청백리가 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모든 언론이 오 시장을 「영웅」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섰던 것이다.
보도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장관사로 쓰고 있는 23평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오 시장은 국회의원과 상급자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청탁 및 이권개입을 거부한채 영세민 등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어 「수범공직자」로 뽑히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지방공직자 등록재산 실사결과 오 시장에 대한 인식은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청백리=가난하고 청렴결백한 관리」라는 등식이 각인된 일반인들에게는 『정말 그럴수가』라는 놀라움,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오 전 시장이 자신의 입으로 『가난하다』는 얘기를 한 적은 없으나 1월 오 전 시장이 광명시장으로 전보 발령나자 가깝게 지냈던 시의회 의원 등이 중심이 돼 『이사관쯤 되어 마음만 먹으면 비새는 낡은 집에서 살지 않을 수 있음을…』이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청와대 등지에 보내 『계속 성남시장으로 머무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청백리임을 거듭 「확인」해줬다.
당사자인 오 전 시장은 정부의 조치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소청을 준비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오 전 시장의 이같은 소청준비가 사실이고,만의 하나라도 개혁드라이브의 와중에 휩쓸려 잘못된 근거와 오판에 의한 「희생자」가 됐다면 물론 바로 잡아져야 한다. 그러나 오 시장의 직위해제 사건은 진정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공직자가 아직은 드물다는 것이 우리 공직사회의 한계이자 현주소임을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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