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한국인 통해 위안부 실체 알고 충격 중국 피해 여성 인권 찾기 나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아직도 일본 군국주의 망령이 살아 있어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양심 세력이 연대해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어야 합니다. 금전적 보상이 목적이 아니라 역사에 분명한 교훈을 남겨줘야 하잖아요.”

중국 최초의 ‘종군 위안부 보고서’가 지난달 발표됐다. 이 보고서 작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캉젠(康健·54·여·사진) 변호사다. 중화전국율사(변호사)협회와 중국법률원조기금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중국 위안부 피해 사실 조사위원회’의 집행 주임인 그녀는 중국의 생존 위안부 47명을 대리해 1995년부터 12년째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인권 변호사다. 최근 12년 동안 캉 변호사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4건의 위안부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3건은 패소했고, 한 건은 현재 1심 패소 후 2심이 진행 중이다.

그녀가 ‘위안부의 대모’로 변신한 것은 95년 9월 유엔이 베이징(北京)에서 개최한 세계여성대회에 중국 대표로 참석한 게 계기였다. 당시 한국 대표단의 위안부 관련 발표를 통해 ‘위안부’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그녀는 또 일본 여성 대표들이 중국 위안부를 돕겠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중국에는 위안부란 말조차 없었죠. 돈을 받고 일본군 부대에서 몸을 판 창녀란 뜻의 군기(軍妓)란 말만 있었죠. 중국에선 역사의 진실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겁니다.”

그 후 캉 변호사는 산시성(山西省)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가 피해 사연을 듣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무료 변론을 맡았다.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에 대해 캉 변호사는 “강제 동원이 없었다는 일본 정치인들의 주장과 달리 일본 군부가 명령 체계를 거쳐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한 사실을 일본군과 경찰 간부의 친필 기록을 통해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소개했다. 보고서는 또 일본군이 12세 소녀까지 위안부로 동원하고, 공자 사당에 까지 위안소를 설치한 사실도 확인했다. 특히 일본군 공식 문서를 통해 많은 한국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는 점도 밝혀냈다.

“위안부 문제가 중국 사회에서 소홀히 취급된 것은 여성의 정조를 중시하는 전통적 성관념 때문에 당사자와 주변에서 이 문제를 기피했기 때문이죠. 죽기 전에 진실을 밝히려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보고서가 나오게 된 겁니다.”
 캉 변호사는 일제 패망 62년 만에 보고서가 나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달 말 미국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한 데 대해 그녀는 “인권을 침해한 전쟁 범죄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의미 있는 결정”이라면서 “2차 대전 이후 일본 군국주의를 철저히 청산하지 못한 원죄가 있는 미국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캉 변호사는 쓰촨성(四川省) 출신으로 중국정법대학을 졸업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