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태평양 미용연구실 과장 왕석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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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화장품업체인 태평양(대표 韓東根)의 미용연구실 과장 王錫九씨(38).그는 남성들이 좀처럼 발붙이기 힘든 여성 상대 직업에용감히 뛰어든 남성이다.
최근 화장을 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남자가여성 화장을 해주는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아직 낯선 느낌이다. 1백75㎝의 키에 80㎏의 거구.여자들로 가득찬 사무실에서王과장만이 유일한 청일점이다.
본인이 결혼할때 손수 자신의 신부를 화장해준 남자이기도 하다. 王과장이 맡고 있는 일은 메이크업이다.경우에 따라서 직접 화장을 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여사원들을 대상으로 화장법 강의를하고 있다.국내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모델치고 王과장의 손길이 가지 않았던 사람이 없다.王과장은 체격만큼이나 손이 두툼하다.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섬세하게 보이지 않지만 그 손에서 매일같이 몇사람씩의 미인들이 새롭게 태어난다.
王과장이 메이크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시절.단국대 응용미술학과에 다니던 시절 연극에 몰두했는데 이때 우연히 무대분장을王씨가 맡았다.
결국 이것이 인연이 돼 화장이 천직이 되었는데 王과장은『대학때 연극만 안했어도 지금은 광고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
王과장이 태평양(당시 태평양화학)에 입사한 것이 83년.처음엔 미용과 관련된 다른 일을 하다가 메이크업에 손을 댔는데 주위의 사람들이 탄성을 지를만큼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는 것.
거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섬세하고 감각이 풍부한 솜씨에 회사 동료들이 놀라워했으며 이때부터 王과장은 메이크업 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편 3형제중 둘째아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던 부모가 마침내「유명해진」아들의 직업을 알게되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장 그만두라는 것이 아버지의 명령이었다.
王과장은 그때를 회상하며『허락을 받기 위해 1주일동안이나 아버지를 설득했다』고 술회했다.
메이크업을 하면서 특히 추억에 남는 것은 안면도에 출장을 갔을때의 일.입사해서 얼마되지 않은 올챙이 시절이었는데 王과장은처음으로 여성의 온몸에 화장을 하는 바디 페인팅을 했다는 것.
아리따운 여성모델의 전신을 만지다보니 손끝에 전 해오는 감촉으로 인해 홍당무가 되었다는 것.그러나 베테랑이 된 지금에는 떨리던 그 손길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고.
王과장은 다른 면에 있어서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다.그리고 술과 담배를 해본 적이 없으며 가정에 충실한 모범 가장이기도 하다. 지금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로운 것이 앞에서 잠시 이야기한 결혼식때의 신부화장이다.
王과장은 사무실에 우연히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만나게 된 지금의 부인과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 날 자신의 신부를 손수 화장을 한 것이다.
王과장은 그때를 회상하며『그야말로 작품을 다듬듯 온 정성을 다해 화장을 했다』고 수줍게 말한다.
王과장은 남자로서 메이크업에 종사하는데 특별한 고충은 없다고한다.王과장은『오히려 남자니까 여자가 느낄 수 없는 또다른 섬세한 면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王과장은『마음이 고와야 미인이 될 수 있다』며『화장발도 마음이 넉넉해야 잘 받는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있다.그는『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으면 화장 자체도 잘 먹혀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金亨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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