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아웅산묘소 순국 함병춘 유고집 한국의문화전통과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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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0년전 버마에서 순국한 咸秉春박사의 유고집『韓國의 文化傳統과 法』이 우리가 걸어온 20세기의 발자취를 정리해야 될 이 시점에서 출간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그의 공직자로서의 국가에 대한 공헌은 역사가 판단할 것이지만,21세기 후반의 대표적 지성인의 한 사람인 그의 논문과 시론들은 한국지성사의 중요한 자료라고 할수 있다.
法社會學的 접근방법을 한국에 소개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맡았던 咸박사는 우리의 法과 정치체계를 법률적.제도적 차원보다는구체적인 사회.문화 차원에서 분석하는데 모범을 보였다.
한국인의 문화적 전통,즉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가치관이 지닌 특수성이 법이나 정치의 기본성격을 결정한다는 것을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오늘날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그의 학문적 입장이 30 년전 형식논리나 제도분석에 치중했던 법학.정치학의 풍토에선 상당히 신선하고 파격적인 것이었다.4부로 구성된 이 책의 부분별 제목-「法과 韓國社會」「韓國의 政治傳統」「韓國의 統一과 國際政治」「韓國의 傳統文化와 現代社會」가 그러한 새로 운 시도를 반영하고 있다. 咸박사는 우리의 전통,그 가운데서도 유교적 규범과 정서에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전통으로부터의 단절은 주체성의 위기를 유발한다는 우려를 거의 모든 논문에서 내비치면서 근대화나 민주화는 전통문화의 계승과 연속선 위에서 진전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학문적 연구 결과를 넘어서 그의 사 상적 및 정서적 성향에 바탕을 둔 신념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선 국제화와 세계화가 강조되고 있다.일찍이 하버드大에서 공부했고 학자와 외교관으로 국제적 명성이 높았던 咸박사도 필경 이러한 추세에 앞장섰을 것이다.그러나 동시에 그는 국제화가 결코 우리의 문화전통과 분리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누구보다도 강력히 경고했을 것이다.유고집의 부제인「갈등과 조화」가 이를 시사하고 있다.〈한국학술연구원.6백87쪽〉 李洪九〈前서울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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