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살인 단정 반성않는 검경/이현상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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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살인범으로 몰려 1년여동안 옥살이를 하던중 진범이 나타나 누명을 벗게된 김기웅순경사건은 검·경의 무리한 허점투성이 수사관행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범인으로 지목된 김 순경이 재판과정에서 일관되게 자신의 범행사실을 부인했는데도 중형을 구형·선고하는 바람에 처음 수사를 담당한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재판부까지 얼굴을 들 수 없게 됐다.
물론 검·경은 사건이 벌여졌을 당시 김 순경을 범인으로 지목할만한 뚜렷한 상황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살해된 술집종업원 이양과 함께 여관에 투숙했다 아침 7시쯤 파출소로 출근해 청소를 했다는 김 순경의 진술,이 시간을 전후해 여관에 출입한 사람이 없었다는 여관주인의 진술 등이 충분한 정황증거라는 것이다.
또 사망 추정시간이 오전 3∼5시로 보인다는 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황증거만으로 김 순경을 범인으로 단정한 것은 성급하고 무리했다.
경찰은 당시 김 순경이 범행후 이양이 가지고 있던 수표 4장을 훔친 것으로 발표했으나 『수표를 야산에 버렸다』고 밝혔을뿐 돈의 행방을 밝히지 못했다.
게다가 침대시트에서 발견된 족적이 김 순경의 것과 일치하지 않았는데도 이 부분을 정밀수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밖에 부검결과 소견은 한두시간쯤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노련한 수사관에겐 이미 상식적인 일이었다.
이같은 허점에도 불구하고 보강수사 지휘 한번 내리지 않은 검찰도할 말이 없게 됐다.
검찰이 9일 진범검거를 발표하면서 『김 순경의 허위자백은 동료 경찰의 설득때문』이었다며 경찰에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자신들의 수사잘못에 대한 반성이 없었던 점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진범이 밝혀지지 않은채 김 순경이 형 확정으로 사건이 끝났다면 어째됐을까.
검·경은 물론 재판부도 99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법언을 다시 되새기며 또 다른 김 순경은 없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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