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없이 둘러앉아 자유토론/APEC 지도자회의 어떻게 진행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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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간편한 복장… 옆방에서 동시통역/김 대통령,신경제 특별설명 예정
시애틀에서 열릴 아­태 경제협력(APEC) 지도자회의는 「3무회의」로 일컬어진다.
참석하는 정상들이 넥타이를 매지 않고 원탁 없는 회의실에 동그랗게 앉아 원고없이 자유스럽게 토론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외교적 회담처럼 배석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필기도구나 메모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언어권이 다른 관계로 각국 정상들이 통역을 대동하지만 별도의 방에서 통역을 한다.
오는 19,20일 미 시애틀에서 열리는 APEC 지도자회의는 외교적 격식에서 보면 이같이 없는 것이 많아 파격의 형식을 띠고 있다. 주최국인 미국과 호스트인 클린턴 대통령의 자유분망함이 이같이 파격적인 구상을 했다는 후문도 있다.
11개국 정상은 20일 오전 8시30분(이하 현지시간) 보좌관 1명,경호원 1∼2명,통역 1명을 데리고 시애틀을 출발해 정상회담을 위해 특별히 전세낸 관광유람선(타이이호) 편으로 오전 9시 정각 회담장인 블레이크섬에 도착,회의에 들어간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때 중국·캐나다·호주 정상들과 회담을 갖는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장쩌민(강택민) 중국 주석과의 만남이다.
강 주석은 APEC 정상들과 모두 만난다는 방침아래 양자회담을 30분씩 갖기로 방침을 정했으나 한국과는 45분을 계획하고 있다. 강 주석은 다른 회원국 정상들과는 자신의 숙소에서 회담을 갖지만 김 대통령과는 제3의 장소에서 만난다.
클린턴 대통령이 조정자역할을 하는 「블레이크섬 지도자회의」 형식은 자유토론이다.
오전과 오후 6시간동안 ▲아­태지역 미래에 대한 비전 ▲국내적·범지역적 우선 고려사항 ▲공동목표 달성을 위한 방안 등 세가지 주제를 놓고 세차례 회의를 갖지만 각국 정상들은 기록도 하지 않는다.
마음을 탁 터놓고 격의없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다.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직전 미국 경제 회생책을 강구하기 위한 경제 지도자회의를 이같은 방식으로 직접 진행했던 적이 있다.
오전의 첫번째 회의에서 김 대통령이 「새로운 태평양시대의 개막」이란 주제로 첫 연설을 한다.
김 대통령은 특히 많은 회원국들이 우리나라 개혁에 궁금증을 갖고 있어 한국의 개혁과 신경제정책에 대한 특별설명회도 가질 예정이다.
그는 이를 위해 신경제의 요체를 규제완화·자유화·국제화로 정리할 것이란게 외무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김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면 정상들은 차례로 돌아가며 3∼4분씩 방담형식으로 자신의 통치철학과 미래에의 비전을 솔직 담백하게 털어놓는다.
회의 중간에 커피를 마시기 위한 휴식시간을 갖는다. 오전 회의가 끝나면 클린턴 미 대통령이 약 20분동안 회의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한다.
브리핑 직후 정상들은 뷔페장으로 자리를 옮겨 미국 북부지방 원주민인 치누크족의 방식에 따라 구운 연어구이 등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이어 회의는 오후 1시30분 속개돼 오후 3시까지 이어진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옆방에서는 동시통역자들이 폐쇄회로를 통해 회의장면을 지켜보면서 한국어·영어·일어·중국어·인도네시아어 등 5개어로 동시통역을 한다.
중국의 강 주석이 발언하게 되면 일단 영어로 통역하고 이를 다시 한국어로 통역하는 「유엔방식」이 적용된다.
통역을 듣기 위해 정상들은 이어폰을 끼고 회의에 참석한다.
오후 회의까지 모두 끝나면 각 정상들은 시애틀로 되돌아가고,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프레스센터에서 회의내용과 분위기를 종합해 설명한다. 골프회동 등 자잘한 일정이 모두 배제되고 격식을 무시한채 열리는 이번 회의가 과연 APEC를 「협력체」에서 「공동체」로 끌어올리는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게 될지 주목된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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