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강풍」에 움츠린 여야/정치개혁입법 YS구상대로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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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득권 상실” 말못하고 속앓이/여/“공정도 좋지만 지나친 이상론”/야
김영삼대통령은 방미에 앞서 15일 또다시 강한 어조로 정치권의 변화와 정치관계법 회기내 처리를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민자당 당직자와 총무단을 불러 『당이 가장 바뀌지 않고 있다』며 정치와 정치인의 변화와 중단없는 개혁을 역설했다.
이러한 청와대의 의지는 여야를 포함해 정치권에 무거운 하중으로 전달되고 있다.
특히 여야가 공통으로 고민하는 것은 정치개혁입법 가운데 자신들의 목이 걸린 선거법 문제다.
대통령이 역설한대로 깨끗한 정치의 구현이라는 명분에는 여야 누구도 반대할 수 없다.
○선거법이 핵심
그러나 기존의 정치 틀에서 기득권을 누려오던 여야 의원들은 누구나 현실정치를 혁파코자 하는 이번 선거법에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청와대의 이상론과 정치권의 현실주의가 국회의 선거법 심의과정에서 부닺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민자당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더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거 행정력 동원과 돈정치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 함구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여당쪽이다. 정치관계법의 개정,특히 엄격한 선거비용 제한과 처벌을 강조하며 개정방향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다름아닌 당총재,즉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15일 청와대에서 당직자·원내 총무단의 조찬에서도 대통령이 제일 강조한 부분이 선거법 개정이었다.
실제로 의원 대다수의 심정적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민자당의 법개정안은 거의 수정됨이 없이 확정됐다. 의원총회와 당무회의를 거치면서 적잖은 반대의사가 피력됐지만 당지도부는 「대통령의 의지」를 앞세우며 원안통과를 강행했다.
공개회의에서 이견을 표명했던 한 의원은 『대부분 의원들이 나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회의에서 분명히 얘기를 했다. 하지만 나의 주장이 법안내용에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며 법개정은 이미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심정을 토로한다.
○대폭 손질 희망
그는 이어 『법개정에 반영되지 않더라도 일단 의원들의 생각이 어떠하다는 것은 밝혀놓아야 나중에 상황이 변할 경우 대처하기 좋다』며 자신의 발언이 차후를 겨냥한 고리임을 밝힌다.
민자당 정치관계법 개정특위에 속한 한 의원까지도 『일반 유권자들을 상대로 돈을 못쓰게 한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조직을 가동할 돈까지 막아버린다면 여당 의원들은 치명적인 불이익을 당할 수 밖에 없다』며 개인적인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그렇지만 법개정을 주도한 민주계 백남치 기조실장은 『그런 생각들은 모두 기존의 잘못된 정치질서로부터 벗어나는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민주당 역시 「깨끗한 선거」라는 원칙에 겉으로는 동의하고 있지만 주요 조문마다 뭔가 꺼림칙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통합선거법의 「이상」을 반대하면 반개혁적이라는 지탄을 면키 어렵고,그렇다고 무턱대고 이를 받아들였다가는 다음 선거가 걱정되는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곤혹스런 입장은 이기택대표가 『청와대에서 한다고 덩달아 하지말고 선거를 치를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개혁성보다 현실성을 강조한데서도 읽을 수 있다.
○“불법범위 넓어”
민주당 의원들은 우선 민자당안처럼 불법선거운동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잡으면 야당 후보에게 불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한 최고위원은 『지난 대구동을·춘천 보궐선거에서 민자당의 금품살포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났지만 누구 하나라도 잡아들였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야당 후보쪽에 이런 사례가 조금이라도 드러날 경우에는 가차없이 문제삼지 않겠느냐』며 권력의 자의적인 법적용 가능성을 지적했다.
민주당의 정치개혁특위 산하 선거법 5인소위에서 「연좌제」 조항에 대한 반대의견이 압도적이었던 것이 이같은 의혹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고민은 만일 통합선거법이 액면 그대로 지켜진다면 현직 의원 그 누구도 다음번 선거에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통합선거법의 목표는 이른바 「게임의 법칙」 확립으로 공정한 「선거게임」을 벌인다는 것이며 금력,유명정당의 공천여부,현직 의원의 프리미엄 등의 이점을 상당부분 무력하게 만들었다.
특히 「게임의 법칙」을 믿고 지금보다 더 많은 후보들이 선거에 뛰어들 경우도 문제다. 역대선거의 경험으로 볼때 후보가 난립하면 거의 대부분이 야권 지지표의 분산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이날 김종필 민자당 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를 청와대로 불러 중단없는 개혁과 개혁의 주체로서 민자당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지난 8일의 신경제 추진회의에서 「국면전환」을 시사한 이후 당정간 개혁에 관해 눈에 띄게 이완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 대통령은 방미전 이점을 당 관계자와 국민들에게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당간부회의를 소집했고 16일엔 전국무위원들에게도 이 사실을 재천명키로 했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와함께 정치개혁 입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는 것과 야당과의 협상이 안될 경우에라도 꼭 처리하라는 강력한 지시를 내리려고 회의를 소집했다는 설명이다. 김 대통령이 『국회가 법을 지켜야 국민에게 법을 지키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전제,최종적으로는 다수결원칙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런 상황을 상정한 것이라는 얘기다.
김 대통령은 자신의 방미기간중 국내 현안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강력한 지침과 더불어 당내 일각의 조기 전당대회설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 분란의 소지를 원천봉쇄했는데 이 역시 개혁 우선의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조치라는 관계자의 전언이다.<김현일·오병상·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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